어떤 팀이 올해 청소년을 위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관습적으로 꿈을 묻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결정인지 걱정이 앞섰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배경에 무엇인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반드시 꿈과 희망을 가졌으리라고(또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판단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팀과 세번의 회의를 했고, 레터를 보냈다.

그 레터의 일부다.

세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합니다. 청소년과 이런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사회의 교육은 흔히 말하는 입시와 경쟁으로 요약되곤 합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대다수의 아동과 청소년이 포함된 공교육에서는 과도한 경쟁이 유발되거나,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으로 우리가 사회교육의 범위를 너무 축소하게 되는 것은 틀립니다. 교육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공교육에서 입시와 경쟁을 말하게 됩니다.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비판속에서도 입시와 경쟁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 것까요. 한정된 자원과 기회의 획득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일 겁니다. 청소년기는 자기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임에 분명하지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즉, 꿈을 가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는 것은 고약한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정해진 길 위에서 걷거나 뛰기도 바쁜데 어디로 가는 지 묻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그 질문이 필요없진 않습니다. 다만, 어디로 향하는지 목적지를 정하고 난 뒤에 길을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 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곤 합니다. 진로탐색이라는 언어가 그렇습니다. 다수의 진로탐색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직업군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이 합당한가를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꿈은 어떤 직업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곤합니다. 현재 기회중인 동사형꿈이나 형용사형꿈이라는 것에서는 진로탐색이라는 어휘선택이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는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