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흔한 투덜거림 중 하나가 일기예보다. 분명히 오늘 아침 예보로는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우산을 챙겨나왔는데 쾌청하다. 우산 하나를 들고 다니는 것이 몸의 움직임에 엄청난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도 하루 종일 우산을 볼 때면 불평하게 된다. 기상을 예측한다는 건 인간의 생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측을 해왔다. 동물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판단하고, 어젯밤 달무리의 모양새를 보면서도 다음날을 예상하곤 했다. 그만큼 날씨는 우리의 삶에 많은 것을 차지하기 때문에 흔하게 투덜거릴 대화의 소재가 된다. 최근들어 이 흔한 투덜거림이 더 많아졌다. 한국인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디지털디바이스에서 그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하늘색이 바뀌면 날씨정보를 찾거나 앱을 열어 확인한다. 그리곤 기상정보 업데이트가 지금 자기 몸이 느끼고 있는 정보와 동일한지 확인한다. 어찌보면 좀 쓸데 없는 일이다. 물론 운항을 나가야 하는 파일럿이거나, 고기잡이 배의 선장이라면 꼼꼼히 체크한 기상정보와 수년간의 경험으로 오는 예측으로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기상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우산을 하루 정도 들고 다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일기예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어서 참고할 뿐이다. 예보 자체도 그렇게 구성되지 않는가. 하지만 기상정보를 손쉽게 얻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 체감하는 것의 중요성을 잃어가는 느낌이랄까. 지금 춥다면 온도가 내려간 것이고, 저 멀리 하늘에 먹구름이 있다해도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저 흐린 날일 뿐이다. 햇살이 쨍쨍한데 오늘 비온다는 온라인 정보를 읽으면서 ‘일기예보란 믿음이 안가는군’이란 마음의 소리가 굳이 필요 없을텐데 말이다. 날씨예보에 오늘 흐리고 비가 온다고 써 있다 해도, 체감하는 자신이 느끼는 정보가 진짜다.

2018년 상상력발전소는 성수동에서 열렸다. 매해 열리는 행사(?)라지만 또 다른 환경을 탐색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상상력발전소의 주요컨셉은 이미 정해진 상황이어서 커미티가 결성되는 시점이 조금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이런 성격의 전시와 파티에는 너무 큰 책임감 없이 참여하는 것이 즐겁기도 한 법이다. 전시를 설계하면서 가장 큰 이슈는 성수동일 수 밖엔 없다. 인간의 사유방식은 사고와 대화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마찰과 충돌의 결과로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수동은 매력적인 곳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더 필요했다고 욕심이 생기지만 어디서든 그 아쉬움은 남는다. 성수동은 오랜시간 쌓아올린 장인의 삶터가 아니던가. 상상력발전소가 지향하는 기본적인 가치는 예술이 작업자를 향하고, 장인이 예술가가 되며, 테크놀로지의 정점에 인간감성을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십년간 쌓아온 장인과 제작문화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예술이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지역과 사람들을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어찌보면 진부한 발상이기도 하다. 여전히 지켜야 하는 것과 새로운 문화가 만나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어서 그럴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진부한 발상과 행동이 또 얼만큼의 시간을 견디며 쌓여질 것인가가 중요하다. 누군가는 뻔한 결론이니 그만 하자고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상력발전소의 새로운 방법론을 내 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공의 지원이나 공공영역의 해석방식에도 특정한 사명감이 부여되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퍼포먼스와 관람객의 수로 몇 마디 평가로 방향이 전환되기에는 아까운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성수동의 수십년간의 역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평가되길 바라지 않듯 상상력발전소 역시 인스턴트에 가까운 쓰고 버리는 시도에 그치지 않길 바라는 바람이 생긴다. 짧은 준비시간은 늘 좋은 핑계가 된다. 어차피 준비할 시간이 짧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과업이 있어 해내야 하는 것 보다는 자율적 판단으로 자신이 해야하는 이유를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참여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다. 2018년 상상력발전소도 짧은 준비시간에 촉박한 일정을 견뎌야 했다. 작가를 선정하고 준비하는 동안 성수동에 대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역시 그런데도 참여해야 하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결합한 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결국 해내야 하는 이유는 없더라.

급변하는 사회, 달라진 문화, 적응하기 힘든 속도전쟁.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들어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들어야 하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따라오는 이야기는 앞으로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 혁명이 다가온다고 선언하고, 대비하며 살아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우리는 그 수 많은 미래예측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했으면 한다. 마치 일기예보를 보면서 현실과 비교하면서 맞네 틀리네를 말하는 모습으로는 오늘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그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