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은 폐간된 월간 너울에 기고한 글.
유스보이스 센터는 나에게 참 좋은 기억이고, 다시 이렇게 하라고 수억 줘도 못할 듯.
그 당시는 유스보이스 브랜드를 다음세대재단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기억이 새록 새록.

유스보이스(Youth Voice)센터

  1. 화(話)를 위한 두(頭)
    같은 일이나 행위를 하면서도 그 행위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의미는 천차만별이다. 그저 흘려듣게 되는 이야기에서도 발견하곤 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첫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첫 번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보면 모르세요...저는 지금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지나자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또 물었다. 두 번째 사람은 “담을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세 번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저는 지금 집을 짓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기업의 마케팅미션을 살펴보면 사업에 자연스럽게 용해된 내용을 통해 유추하게 되는 것이 있다. 기업의 존재방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행위자가 벽돌을 쌓느냐, 집을 짓느냐의 차이와 같다. 소개하는 싶은 사례는 다음세대재단과 주)다음커뮤니케이션즈(이하 다음)이 운영하는 사회공헌사업이다.

  2. 유스보이스의 시작
    2002년 다음세대재단은 정보사회의 격차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업을 기획한다. 정보를 가진자와 소외된자 사이에 생기는 격차가 생산력의 유무를 결정하기에, 그 매개가 되는 미디어와 교육시스템이 생성되지 않는다면 문제를 발견하기조차 힘들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단지 불거진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발상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문화적 접근방법이란 가장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음세대의 문화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위해선 필요조건이 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도식적 사고가 아니라 입체적 문화디자인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다음세대재단의 유스보이스는 런칭 후 다양한 젊은 목소리와 주장이 담긴 미디어를 생산한다. 초기에는 건강한 미디어로 젊은 목소리(즉, Youth voice다)를 내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청소년을 지원/격려하는 것이었다. 미디어장학금이라는 제도를 두어 웹이나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작업하는 청소년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장학금을 받은 청소년에게는 가장 솔직한 고백과 제안을 받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학금이 아니라 멘토다”라는 것이다. 청소년이 미디어로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매체자체를 잘 다루는 기술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누군가를 만나서 자신들의 미래를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후 유스보이스라는 브랜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미디어작업을 위한 선택적 교육시스템, 현직 미디어작업자와의 멘토링, 제작지원비를 지원한다.

  3. 유스보이스 진화하다 - 사각지대를 찾아나서다.
    유스보이스의 진화는 단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원액수와 대상을 확대하고, 멘토의 수가 많아지거나 브랜드가 유명세를 타는 것은 차기 과제였다. 진화의 핵심은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유스보이스에 모여드는 청소년이 외치는 필요에 대한 대응에 가깝다. 차기과제들은 이런 진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획득한 부가이윤이다. 유스보이스가 미디어의 사전제작지원을 시작하면서 전국에서 청소년이 모여들었고, 온라인을 통해서 웹과 음악, 만화, 사진, 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등의 작품이 소개되거나 상영되었다. 제작지원을 받으면 전문가와 주기적인 멘토와의 만남이 진행된다. 온라인와 오프라인에서 멘토링이 진행되면서 미디어작업이 진지해지기도 했지만, 가장 유효했던 것은 작업완료시점을 조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견한 첫 번째 사각은 사회로 향한 의미있는 소통이나 대중(온라인을 통한)을 만날 수 있었지만 청소년간의 네트워크가 힘들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또래가 만나는 것은 비슷한 고민의 내용을 공유하면서 사례를 통한 해결과정의 반영과정이 문제해결에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획된 것인 유스보이스 미디어캠프다. 제작지원을 받게 된 청소년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모임의 성격이었지만, 자기 작업에 모티브를 제공받을 수 있는 미디어워크샵이 함께 캠프에서 프로그램화 되었다. 몇 년간 미디어캠프를 운영하면서 대상이 되는 청소년은 사전제작지원을 받는 팀이었다. 여기서 두 번째 사각을 발견한다. 사전제작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이 사회의 미디어와 소통에 대한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청소년이 있다는 것이다. 직접 미디어작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디어 소통구조나 원리와 철학을 토론하고 싶은 청소년에게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웹디자인을 하고 싶지 않지만 파워블로거로 살고 있거나,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지만 텍스트를 분석하거나 지적인 호기심이 발동하는 경우는 꽤나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기획한 사업이 미디어컨퍼런스다. 캠프에서 운영하던 미디어워크샵을 독립시킨 형태인데 인문학적 사고로 확장되었다. 해마다 300여명이 컨퍼런스를 통해 미디어언어와 미디어표현의 근본이 되는 철학적 사고를 풀어내는 장이 되었다. 유스보이스는 여기서 세 번째 사각을 발견한다. 사전제작지원과 미디어컨퍼런스는 정보획득 능력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청소년으로 구성되었다. 정보격차의 문제나 자기표현과 사회적 의미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적합한 미디어를 찾아내지 못한 청소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위해 도시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고 찾아갈 필요를 느낀 것이다. 실제로 정보의 격차는 지역과 그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에 가깝다. 근거리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문화가 존재하는 한 미디어작업이나 활용, 정보획득과 재구성능력이 자연스럽게 확보된다. 하지만 농/산/어촌은 경우가 매우 달랐고, 규모가 작거나 지역환경이 미디어와 동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소외감은 더 컸다. 이렇게 발견한 세 번째 사각은 두 가지의 사업으로 분화되어 나타난다. 하나는 도시임에도 미디어에 고립될 수 밖에 없는 저소득가정에서 성장하거나, 농/산/어촌의 어린이를 만나는 다음미디어스쿨이다. 이 사업은 다음 사회공헌팀이 직접 기획/운영한다. 다음은 유스보이스 플랫폼을 운영하였기에 이미 유스보이스는 전격결합하고 있었지만 다음미디어스쿨을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참여하게 되었다. 지역에 있거나 지역사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대학생들을 선발하고,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세 번째 사각에서 발견한 두 가지 사업 중에 다른 하나가 유스보이스센터다. 유스보이스 센터는 지역사회에 미디어와 교육, 교육자가 지역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미디어제작을 지원해준다고 하여도 정보획득이 되지 않는다면 한계가 있으며, 원거리에서 살면서 특별한 이벤트처럼 멘토와 만나는 경우 지속적인 활동이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쉽게 해소하기 힘든 과제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유스보이스센터의 역할은 유스보이스 전체로 볼 때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4. 유스보이스센터 - 지역이 이미 콘텐트다.
    유스보이스센터는 지역사회에서 미디어작업을 하는 청소년을 발견하고, 전달체계를 고민하면서 기획된 사업이다. 유스보이스센터를 형성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지역에서 오랜시간 청소년을 만나면서 미디어소통과 교육을 기획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단체였다. 영상제를 기획하거나 단기적인 영화창작교실을 열었던 경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청소년을 만나면서 정보격차해소의 담론을 이해하고 미디어소통의 교육적 필요가 분명한 단체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그 단체가 특정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청소년이 멤버쉽을 가지고 찾아오는 곳이어야 했다. 엄청난 예산을 끌어 모아 건물을 지어주고 운영자를 찾는 방식은 지역의 자생적 활동구조를 해하는 것이라는 판단이기도 했고, 그 자체로 사업운영을 위한 사업단이 마련되는 것도 불편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 요소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서 살며 활동하는 미디어작업자 또는 미디어교육자(이하 통칭 미디어활동가)였다. 여기서 장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나 사진, 애니메이터의 직업을 가진 작업자가 있겠지만 어떤 특정장르를 보급하는 거점이 아니었기에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미디어활동가가 지속적으로 할동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청소년을 만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살며 지역을 이해하는 작업자가 건강한 단체와 공간을 만나는 것이다. 지원이나 캠프, 컨퍼런스를 통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은 미디어문화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란 것이었기에 끊임없이 대도시와 비교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미디어활동가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생계형에 가까운)에서 벗어나서 활동을 하며 청소년을 만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유스보이스센터의 지원사업은 3년간 동일한 지역의 유스보이스센터에 미디어활동가의 인건비와 교육내용에 대한 질적 성장을 위한 교육기획 수퍼비전, 센터 간 교류활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초기 네 곳의 유스보이스센터로 시작했다가 2008년 현재 세 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성남센터 디딤돌학교, 천안센터 해누림, 청주센터 노리울공부방이 그곳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나 그 지역만의 네트워크구조와 형성과정, 지역에서 성장한 아이들과 지역사회 미디어활동가의 만남, 미디어교육이 대중화되면서 일반화된 방법론에서 특별한 교육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지역특수성 발견이라는 성과는 이미 지역자체가 콘텐트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5. 여전히 사람이 중요하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다. 여전히 사람이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고,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 성장하고 무엇을 하기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끝이 없다. 지역사회에서 문화와 교육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누가 행위자인가?”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스보이스센터가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기업이 소박한 꿈을 꾸는 지역사회의 활동가에게 동력을 제공하고,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자고 손을 내밀면서 과감히 실천하는 사업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