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 환 랩_2022 / 기 획 자 의 노 트

[2022년 순환랩 기획과 결과를 정리한다. 총 여섯개 랩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리빙랩+교육프로그램 R&D로 2021년과 마찬가지로 가설과 검증의 프로세스가 적용되었다. 연령과 장르를 다양화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여전히 순환랩 정도의 사업규모로는 문화예술교육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기획의 동기와 시대를 읽어내려는 시도로는 충분히 유의미한 성취가 있다.]

김탕(순환랩 디렉터/PaperCompany_Urban큐레이터)

1. 예술과 (예술)교육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대.

예술은 현대사회에서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성을 쥐고 다양성을 견지하며 다채널을 통해 수용자와 소통한다. 이중에서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예술은 미래를 제시하면서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이런 면에서 예술가는 어쩌면 현재를 살며 미래를 말하는 직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동시대의 경험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 뿐 아니라, 경종을 울려야 하는 순간을 찾고 매체를 넘나드는 은유로 예술적 사유방식을 스토리화하는 것이 현대사회 예술가의 특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예술은 사실기록을 넘어선 세계에 늘 관심이 있었다. 폭력에 항거하거나 선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인간정서를 놓치지 않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사회에는 제동을 걸어왔다. 지금의 예술과 예술가 역시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라는 기초에 분명 현재의 감각적 사유를 넘어선 세계에 대한 묘사와 주장이 있어야 함을 잊지 않고 활약 중이다. 기후변화와 위기의 시대는 예술과 예술가에게도 큰 영향(또는 영감)을 행사한다.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등장하는 위기에 대한 메시지는 때론 공포와 좌절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좌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제시/제안하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런 예술과 예술가들이 교육씬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왜 현재를 살아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교육에 들어서면 관습에 가까운 공교육프레임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가. 시대를 읽고 학습하며 작업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축소하고 재료를 능숙히 다루는 기능과 표현기술,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에 몰두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그 결정을 주도한 누군가가 있다면, 이제는 예술가의 예술과 교육에 대한 자율성을 발생시키고 예술 본래의 기능(위기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포함하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예술이 이념을 전수하던 시대가 지나고, 국가를 넘어선 인류가 공동체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 가져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많이 늦어버린지도 모른다.

2. 이슈에 민감하고, 행동에 둔감한 사회

지구위험한계선(planetary boundaries)은 2009년 스웨덴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과 미국의 윌 스테판을 중심으로 제시, 정리한 개념이다. 기후변화, 생물권 손실, 토지사용의 변화, 담수 사용량, 생물-지구화학적 순환, 해양 산성화, 대기 중 에어로졸 농도,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신생물질. 이 아홉가지로 측정한다. 그런데 이미 이중 절반은 그 한계선을 넘어섰고, 연쇄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가속이 붙었다. 특히 기후와 종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것의 기초에 놓여있다. 순환랩은 기후위기와 생태순환의 문제에 예술과 예술교육이 어떤 태도로 대응하고 있어야 하는지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를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요약한 해법이나, 관찰자의 시점에서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험을 기초에 두는 연구와 실행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절대다수의 한국인은 이 위기를 인간이 발생시켰다는데 동의한다는 리서치 결과를 자주 접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기후위기나 생물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보자. 쓰레기 발생과 처리, 자원순환에 대한 실천에도 꽤나 적극적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고,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 말한다.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의견을 보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쓰레기나 쓰레기 문제가 줄지 않는다. 생활쓰레기는 눈에 보이지만 산업쓰레기가 더 큰 문제라는 것까지는 인지 못하거나,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에 동의하지만 택배와 배달음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더 근원적인 문제에는 닿으려 굳이 노력하는 것 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자기 실천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을 깨기 어렵다. 연장선상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한가. (전수조사를 한 것은 아니었기에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공개된 교육프로그램에서 기후위기나 환경문제를 다루는 예술교육의 다수가 ‘버려진’이라는 태그를 달고 등장하는 재활용품을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제작이거나, 생태체험장을 중심으로 다분히 인위적인 환경에 의존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운영, 실행한 프로그램이 무가치 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문제는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학습이 병행되어야 하고, 그 실천영역에서는 더 능동성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생활쓰레기를 줄이는 실천 만큼이나 산업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실천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버려진’ 꼬리표를 단 재료로 만들어진, 흔히 말하는 ‘예쁜 쓰레기’를 끝없이 생산하면서 환경문제를 말하기 어렵다.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후위기와 종다양성등의 문제를 학습하고 실천으로써 예술이 될 수 있도록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순환랩의 기초

인간의 감각은 자연과 사회를 인지하는 방식이지만, 오히려 감각에 의존하는 것은 현상을 오해하거나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는데 제한적이다. 기후변화 또는 위기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개인의 경험으로 취한 감각정보는 지극히 한정된 인식을 만든다. 다만 그 보완으로써 미디어가 기능하며 간접경험이 정보로 처리되지만 현상에 대한 총체를 인지하는 것으로 부터 더 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인이 정보와 지식을 소화해 내기 버거운 것이라면 국가 또는 정부에게 일임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사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공적 영역에서 다루는 정보에 대한 태도는 이해득실로 부터 자유로와야 하며, 교육은 그 정보와 지식의 토대위에 세워져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시험문제를 잘 풀고 특정한 지위 혹은 신분획득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설명할 이유는 없다. 연일 리포트되는 기후변화와 위기는 우리의 삶을 뒤바꾸고 있다. 절망을 말하기 이전에 지금 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먼저다. 예술가는 이 위기에 대한 경고를 작품으로 만들어 사회에 말을 건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은 위기의 시대를 교육을 매개로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말을 걸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순환랩이다. 위기는 소재나 교보재가 아니라 주제어가 되어야 하는 시기를 살아내면서 여전히 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문화예술교육이 갇혀 있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필요하다. WMO는 2022년 5월 업데이트 보고서를 냈다. 기후위기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1.5도를 기준으로 세운 후 수 많은 석학이 참여해 분석한 결과다. ( https://hadleyserver.metoffice.gov.uk/wmolc/WMOGADCU2022-2026.pdf ) 각국 정부와 언론이 주목한 것은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이었다. 상징과도 같은 ‘1.5도’는 2022년에서 2026년사이 즉, 5년내에 1.5도 상승을 절대적으로 예측하진 않았다. 하지만 냉정한 경고는 48%의 가능성이었다. 5년내에 1.5도 상승의 가능성을 48%로 예측했다. 이전 5년에 1.5도 상승의 가능성은 10%의 예측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결과가 아니라 말하기 힘들다. 식량 또는 식품의 위기는 코 앞에 다가왔다. 브라질은 가뭄으로, 콜롬비아는 폭우로 커피생산량이 급감했다. 전세계 감자생산량 2위인 인도는 폭염으로 인해 수출길이 막혔고,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따른 곡물생산은 인류의 생존문제에 대한 본격 경고가 시작되었다. (그린피스의 기후위기 식량보고서 https://www.greenpeace.org/static/planet4-korea-stateless/2022/02/5acb70fc-기후위기-식량-보고서-—-사라지는-것들의-초상-—-식량편.pdf ) 초연결시대라는 말은 디지털이나 온라인 기반의 관계망을 먼저 떠올리지만, 식량 위기의 도미노를 보면 지구인의 분업이 얼마나 촘촘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는 지구 반대편 기후의 변화로 무너진 한개의 조각으로 인해 생존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따위의 문제로 해결가능하지 않다. 기후는 지구전체의 초연결성이라는 대 전제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히 ‘인간은 기술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안일한 대응을 펴고 있는 이유는 거대자본과 산업종사자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본다. 만약 수질오염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세탁기가 개발되어 세제를 전혀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그 기술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전세계 수천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져야 하고, 그와 연관된 생산관계망이 사라질 것이 예상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말이다. 전환의 순간이 각인되고 감각으로 위기를 이미 마주했다 해도 촘촘한 사회구조 안에서 선택은 바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다음세대는 앞으로 인류를 위한 생산수단을 관리 또는 분배하면서 생산력을 획득하여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다음세대에게 생산력을 주도 할 수 있게 건네주어야 가능한 것이 생존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면 실천의 범례를 제시하거나, 객관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교육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다시 강조할 이유가 없다. 최근들어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전 세대를 통틀어 정보의 선별 능력과 해독력 저하를 사회문제라고 지적한다. 문맹이 사라진 한국에서 이른바 리터러시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사회는 더욱 세분화되고 복잡해 졌기에 학습가능한 정보와 해석을 더욱 요구한다. 기후위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수 없이 많은 현상과 지표를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누군가의 요약에 의존해야 한다. 요약은 본질을 흐리기 쉽기 때문에 위험하다. 소셜미디어와 뉴스의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그저 막연한 공포 이상의 것이 되지 않는다. 막연하다는 것은 무엇을 할것인지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상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행동으로 연장하려는 개인의 시도는 누군가가 ‘이렇게 하라’는 요약본의 지시사항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강도높은 실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비닐쓰레기를 줄인다며 사들인 토트백과 장바구니, 1회용컵을 쓰지 말자며 집에 쌓여가는 텀블러의 숫자가 그 예다. 그 결과 비닐쓰레기가 줄지 않았고, 1회용 컵의 생산이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실천을 하는 개인은 공장을 통과한 토트백과 텀블러가 만들어내는 탄소배출에 대해서는 외면한다기 보다 상상하기 힘들 뿐이다. 이것이 리터리시의 문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순환을 다루는 것은 결국 리터러시를 기반에 둔다. 행위는 문화와 예술에 범주에서 일어나지만 순환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철학을 탐구하며 행동원칙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2년의 순환랩은 연구주제를 설정한 각 지역의 랩이 참여자(연구자, 실험주체)가 문제의 본질을 탐색하고 행동의 원칙 만들어가기 위한 예술행위와 문화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한다. ### 4. 2022년의 순환랩을 정리하는 네개의 키워드

참여자의 자발적 학습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자료를 찾고, 토론하고, 행위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교육자가 제시하는 방식은 거의 배제하고 학습자가 스스로 발견한 문제의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순환랩에서 기후위기 리터러시가 가능하다. 순환랩의 기조를 설명하고, 참여한 아티스트가 해법을 가지고 등장하는 전달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 학습과 탐구하려는 태도가 생겼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닫힌고리를 실천하는 문화예술교육은 그리 쉽지 않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생산자의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을 교육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기 보다는, 관습에 가까와진 실천방법에서 무리가 생긴다. 예술가의 경험순환이라는 면에서 닫힌고리는 가능하다. 현장에 학습자가 동행하고, 예술가가 바라보는 시점 또는 관점을 나누는 것이 경험순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원의 측면에서 닫힌고리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내는 것은 시도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이후 순환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산자와 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자원을 채취/가공하는 생산자가 아니라 가공품을 재료로 삼는 2차 3차 가공생산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반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살것인가를 키워드로 두고 기획하던 기호의 전환과 인간 존엄성을 담는 프로젝트는 문화교육에서 꽤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미 생활속에서 과거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거나, 문화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을 추론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 다시쓰기(reuse) * 개인의 실천에서 소비재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 왔다. 반면 산업은 끝없는 소비를 부추기며 지능적인 방법으로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유행을 만드는 것은 특별한 개인이 아니라 자본과 만나야 가능하고, 적지 않는 비용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소비유행이 생겼다면 그 유행이 끝나는 순간이 문제다. 이것은 취향과 무관하진 않지만, 평판관리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이해득실의 관계이거나, 근사한 삶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내면 소비재를 팔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다. 알고 있고 거부하고 싶더라도 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선택권이란 없어 보이기도 하는 최면과 같다. 이는 마치 ‘당신의 소비는 당신의 선택이었고 그로인해 쿨하고 즐거운 삶이 찾아왔다’고 암시하는 것에 가깝다. 문제는 쓸 수 있는 것을 폐기하고, 그 폐기물은 고스란히 쓰레기가 된다. 이렇게 쌓여가는 폐기물이 제3세계로 일컫는 나라에서 도시를 슬럼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산업은 쓰고 버리면 더 싸고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고쳐쓰기 보다는 다시사는 비용이 덜 든다는 말은 흔히 시장에서 솔깃한 유혹이 된지 오래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며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당연히 지적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가장 쉬운 해답은 다시쓰는 방법이다. 풀어야 하는 숙제는 평판관리에 가까운 소비를 어떻게 전환해 낼 것인가에 해당한다. 즉, 다시쓰는 것을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경험하는 장이 필요하다. 2022년 순환랩이 의류를 교환하고, 갤러리와 전시장의 부스를 모듈화하는 연구로 다시쓰기(reuse)에 대안을 연구 실행한 이유다.

2) 예술의 재료에 대한 탐구 예술의 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은 지구 어딘가에서 채취한 것이다. 하지만 채취한 후 공장을 거쳐 대량생산한 재료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질문을 시작했다. 그림을 위해서 화방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화방의 종이는 나무에서, 물감은 광물에서, 오일은 꽃과 씨앗에서 온다. 한장의 그림을 위해서 우리가 의존하는 각종 유기/무기물을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생명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화학적 재료가 첨가되고 간소화하고 쓰기 편하게 만들어지면서 대량생산 공정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재료가 자연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방어막 같은 것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연속성을 알기 시작하면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사용하던 각종 재료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재료를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예술가의 태도자체가 이미 예술경험으로 충분하다. 2021년 부들이야기에 이어 왕송못이 찾아내려고 한 것은 예술의 재료에 대한 탐구다. 그림책은 그 탐색과정에 대한 미디엄으로 존재하며 그 작업 역시 예술의 한 영역이지만,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관찰과 탐색, 연구와 실패의 과정을 넘어서면서 범지구적 상상력과 순환력이라는 재료를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또한 비건베이킹을 청소년과 실험하는 과정에서 생산지의 농부를 직접 만나고, 재료의 생장을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 역시 재료에 대한 탐구의 영역이다.

*3) 존엄의 가치 * 분명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긴장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호기롭게 여유를 부릴 것이 분명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그 이유는 분명히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후문제는 재난을 목전에 둔다. 재난이 닥쳐올 때는 예고가 없다. 그래서 대처하는 방법을 찾는 것 밖에. 문화교육은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살것인지 말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재난이란 심각한 상황에서 개인이 겪게 되는 경제적 손실 뿐 아니라 무력감과 패닉, 생존을 위한 비인간적 삶이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비교적 자연재해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한반도에도 잇달아 지진과 폭우, 홍수, 가뭄등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연쇄작용이다. 재난의 상황이 오면 생존이 일순위로 거론되지만, 우리사회의 시스템은 생존위기를 갓 벗어나면, 생존을 위한 물적지원이 전부다. 정작 가장 중요한 재난앞에 놓인 사람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패닉과 무너진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다. 순환랩에서 재난을 중심에 두고 비상배낭을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작업은 기후위기로 재난앞에 놓인 개인과 가족에게 삶의 태도를 어떻게 취하며 이 시대를 살 것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 해당한다.

4) 소재화 플라스틱은 1907년에 벨기에의 화학자 레오 베이클라이트가 발명했다. 한마디로 가볍고 튼튼하고 변형이 쉬운 놀라운 발명이었다. 수십년 키워서 베어내 사용하는 목재보다 만들기 쉬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공이 쉽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국 왕립통계학회의 2018년 올해의 통계에 우승은 90.5라는 숫자였다. 플라스틱은 90.5%는 재활용되지 않았다는 통계숫자다.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면 분리배출이 소용없냐며 반문하고 심각하다 말 하지만, 재활용한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이 그 공정을 위해 값이 비싼 제품이 된다는 것과 구매할 의사를 표명하는 이는 흔치 않다. 즉,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플라스틱은 사용 후 90.5%가 폐기처분되는 통계 앞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이 매력적인 소재로 전환되지 않으면 단지 비용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다음세대에게 넘겨주는 재앙이다. 순환랩에서 생산자와 결합하여 소재의 적극적인 활용도를 실험하고 디자인에 포함시키며, 그 피드백을 통해 워크숍이나 전시를 구성한 이유다.

5. 리빙랩과 교육랩

리빙랩으로써 순환랩은 조금 가벼운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참여를 지향하고, 비전문가가 탐구를 결정하는 순간으로 안내하는 집단행동이기 때문이다. 연구소나 실험실을 상상한다면 흰 가운을 입거나, 학자들이 모여서 긴 시간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반면 리빙랩은 그보다는 훨씬 가볍지만 문턱없이 드나들며 현재 나의 삶과 직접 결합한 과제를 설정하기 때문에 자율성에 기반을 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학습방법론에 가깝다. 여기에 예술가가 이 랩을 주도하지만, 연구원으로 참여한 사람들로 부터 연구방법론과 실행이 정해진다. 하지만 교육랩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즉, 문화예술교육연구다. 어디서 부터 학습의 동기를 설정할 것인지는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두기 때문에 예술가는 이 과정에서 방향타를 쥐지만 함부로 꺾을 수 없다. 연구소 또는 실험실의 기능을 간결히 설명하자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실패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검증한 결과를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실행과정에서 성공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만큼이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향해간다. 과학이나 공학에서 운영하거나 아카데미안에 존재하는 랩을 지향하는 것이라기 보다 순환의 주제를 예술교육으로 해석하고/연구하고/실행하는 조금 다른 개념이 적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랩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향해가는 의미는 같다. 그래서 순환랩은 기존의 예술교육에서 교육자:학습자의 관계방식을 빗겨가며 교육행위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것을 제안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교육자의 커리큘럼을 학습자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학습자인 참여자는 랩의 연구원으로 결합한다. 연구원 개인 또는 소규모의 집단은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순환랩안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구결과를 내놓는 방식이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로 설정하기 보다 랩에서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계한다.

6. 2023년의 순환랩에게 넘기는 주제 또는 과제

2022년 스스로 선택한 학습방법과 리터러시, 열린고리와 닫힌고리,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문화적 태도, 쓰레기와 자원순환의 예술, 생태감수성과 생활문화를 다뤘다. 실패와 성공의 순간이 교차한다. 여전히 다룰 수 없었던 핵심적인 문제들 역시 존재하고, 교육으로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도 있다. 2023년 이후 순환랩은 무엇을 더 다룰 수 있을 것인가 몇 개의 제안을 한다.

1) 자원 채취 당사자의 참여 다양한 예술의 재료 혹은 마땅히 재활용, 리유즈할 수 있는 자원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지 정작 당사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한계임에 분명하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 병뚜껑을 모아서 배낭을 만들자, 패스트패션을 리메이킹하여 입자. 이런 이야기들의 원인 속에는 산업의 경제논리가 항상 숨어있다. 쓰레기를 만드는 비용이 쓰레기를 해결하는 비용보다 더 적게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자원 채취자와 생산자가 이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2) 퍼포먼스 * 순환랩에서 자원이 가진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주로 물성이 있는 랩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메시지 생산에 주력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본다. 순환이 주제어가 아니라 퍼포먼스의 구성요소를 친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획.

3) 에너지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에서 다루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 기획과 연구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종사자의 규모나 전문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대체에너지 연구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오토마타와 로보틱스의 기술이 어느정도까지 적용될 수 있고,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 사례를 연구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4) 재생공간 수년전부터 도시재생이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도시재생지역은 재생이 되었다기 보다는 상업적 이용시설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생활공간이 재생을 거치면서 용도가 완전히 전환되었다. 잘못된 사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재생의 철학이 무엇인지 되물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다. 공공성을 가진 폐기 직전의 공간이나 시설을 재생하는 사업이 있다. 하지만, 재생공간이란 껍데기는 낡고 내부는 초 현대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 어느 곳을 가봐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의미의 재생은 그저 리모델링에 지나지 않는다. 내 외부가 자원순환의 관점을 지향하는 공간을 기획해 보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7. 불공평한 세계를 살아가며

우리나라의 스포츠 시설 중 골프장의 갯수는 1%라고 한다. 하지만 스포츠 시설 면적의 89%는 골프장이라는 통계를 봤을 때 깜짝 놀랐다. 골프장이나 스키장을 건설할 때 인간이 빼앗은 생태계의 불균형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소수가 차지하고 있는 토지사용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올해 프랑스의 환경단체는 골프장에 있는 홀을 시멘트로 메꿨다. 극심한 가뭄과 열돔현상을 경험하면서 세차를 제한하고, 광장의 분수를 멈추고, 수영장 사용제한을 권고했다. 하지만 골프장 잔디의 스프링클러는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그 기사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막혀버린 시멘트를 깨는 사람은 저 골프장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닐텐데’ 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그냥 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결국 말단 직원일 것 같았다. 어림없이 틀린 추측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예술가와 문화예술교육자들이 적극 나서서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 위기를 초래한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 무기력이 찾아오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예술가와 교육종사자와 나누고 싶다. 있는 그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