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랩_기획자의 노트

ARTICLE 2022-01-03

[2021년 순환랩 기획과 결과를 정리한다. 사업시작이 9월이니 2021년이라는 표현이 다소 민망하다. 총 일곱개의 지역과 단체가 랩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성과나 가능성은 각 팀의 리포트로 정리되지만 기획을 총괄한 입장에서 이 리포트를 남기는 것은 필요해 보여서 몇자 적는다.]

김탕(순환랩 디렉터/PaperCompany_Urban큐레이터)

1. 위기에 대한 태도와 대응.

문화교육이나 예술교육이 무엇으로 정의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기의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어떤 각성이 있어야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 지도(地圖) 또는 항로(航路)를 그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순환랩은 독도법 또는 항법이다. 위기를 정의하고 전방위 대응책을 만들고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라도 하자는 식의 대책없이 덤벼드는 것은 무모한 시도다. 즉, 그 어떤 극단의 선택이 지금의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등을 해결하는데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부질 없다는 뜻이다. 순환랩을 기획하면서 가장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필요이상의 것을 소비하면서 생산성(특히 부가가치)을 말하던 시대의 종말을 선언해야 하는데 산업과 자본의 메카니즘에서 크게 벗어나야 한다거나, 쓰레기가 쌓여가는 것을 강조하면서 재활용아이디어가 마치 결정적 대안인 것 처럼 포장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막상 순환랩의 시작을 위해 학습하는 과정에서는 비난 받아 마땅한 시스템 투성이에다, 각국 정부는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국제사회의 정치질(!)이 난무했다. 원인이 분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에도 부족한 시간과 자원은 수십년간 미루고 방치하다 현재에 다다른다. 자원고갈과 기후위기가 체감할 만큼 앞에 다가오자 친환경 정책은 국제사회 정치, 사회, 산업등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산업과 자본의 태생적 한계를 가지면서도, 환경/사회/거버넌스라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지표를 드러내는데 급급하다. 또한 각종 비영리 캠페인과 교육은 이 위기시대의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전하고 삶의 대안을 만들기 보다, 이른바 ‘소소한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실수에 가까운 판단이라 생각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 역시 이 위기의 시대와 철학이 담긴 행위로써 예술과 교육을 제안할 것인가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다.

2. 다음세대에게 환경문제와 위기는

2019년 UN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6세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은 과감하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꿈과 어린시절을 빼앗았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라고 소리쳤다. 각국 정상이 지속가능한 경제에 대해서 떠들고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고 싸우는 동안 다음세대에게 전한 재앙에 대한 질타였다. 지금의 위기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을 포함한다. 이 공포는 다음세대 뿐 아니라 당장 우리 눈 앞에 놓여진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인 기존 질서와 맞서야 하는 행동으로 치환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아동/청소년은 행동주체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제도교육의 관성이 그러하고, 산업에 가까운 사교육시스템이 강고하다. 여전히 초유의 관심사가 입시의 관문을 통과해야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강력한 힘이 작동한다. 그래서 바로 앞에 놓인 재편되는 세계에 대응할 능력과 기술로 부터 동떨어져 있다. 지금 시작해도 늑장대응이 될 생태와 환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실험의 장에 청소년은 항상 뒷전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 화석연료의 사용. 에너지전환시나리오. 탈탄소화관점. 이런 키워드를 이 위기를 만든 세대들의 손에 맡겨 놓기에는 불안해야 마땅하고 행동으로 전환해야 하는 때다. 청소년은 내일의 주인공이라는 언어는 이제 낡았다. 내일은 관념이지만 오늘은 현실이며 ‘나’를 직시하게 만든다. 청소년정책과 사업은 마치 청소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던 시대가 전환되는 이유도 그와 유사하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해결과제 또는 현재의 삶에 대해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기가 이미 찾아왔다. 1992년 UNFCCC(UN기후변화기본협약)은 지구온난화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각국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며 시작했다. 선행연구가 밝혀낸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심각성은 세계적으로 이미 30년전부터 발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구온도는 이미 상승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를 만난다. 정치/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세계의 무역과 시장은 더 많은 생산량을 선점하려고 했을 뿐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감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생태계의 깨져버린 링크와 인류의 생존문제가 그 어떤 위기보다 최상위가 되었다.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전하는 미디어는 여과한 정보로 위기를 순화시켜 왔다. 대중적 공포를 조장하며 패닉이 만들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었지만, 2021년 현재를 살아가면서 더는 숨길 수 없어질 만큼 기후-환경-생태계의 순환고리가 회복사이클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정보로 노출된다.

3. 순환(circulation) 또는 회복(resilience)

‘00의 시대’라는 말은 때론 거창하게 들린다. 전환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이념과 구조가 바뀌는 변화의 시대를 말했고, 기술과 과학이 산업의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빅데이터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때는 데이터 테크놀로지 시대가 도래한다고 들떠서 말한다. 다행히도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단어의 조합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인류문명이 산업자본과 결합하면서 환경은 급격히 황폐화의 가속이 붙었다. 우리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이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어감의 시대다. 기후위기시대나 에너지고갈시대가 그렇다. 변화가 아니라 위기이며, 부족이 아니라 고갈이다. 분명 누군가는 이런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정치적 도구로 사용 중이라 말할 것이며, 인간의 기술은 여전히 대안을 찾아낼테니 기다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과학자가 건조하고 냉소적으로 이 상황을 전하고 있으며 체감할 정도의 변화를 목격하는 이 시대에 예술과 예술교육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때론 강렬한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영적 소통이나 신앙의 증거로 종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통찰의 시선으로 사회에 말을 걸며 날카로운 비판을 상징과 은유의 코드로 풀어냈다. 지금 우리시대의 예술은 그래서 지구의 재앙에 대한 경고를 담기도 하고 인식의 프레임을 전환하려 노력한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주제의식이 예술의 한 영역이나 장르로 파고들기 보다, 이 시대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예술가의 작업은 선언이 되기도 하고 액티비즘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예술교육은 이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순환랩에서 지칭하는 순환은 크게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원의 순환. 남김없이 사용하기 보다 필요에 대응하며, 자원은 어떻게 순환하는지 살펴보면서 이 시대의 예술교육 지향점을 찾는다. 2) 예술가의 경험순환. 인간은 문화를 전수한다. 경험이 순환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정한 기술의 노하우등을 말하기 보다 예술가는 어떤 경험을 공동체에 전하고 있으며, 그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공유할 가치를 탐색한다. 3) 회복(탄력)가능한 순환. 흔히 지속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이때 누가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를 모호하게 설정하면 곤란하다. 예술교육이 지구력과 회복력을 가지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작업할 것인지 실천 연구와 실행을 병행해야 하는 시기다.

4. 순환랩을 정리하는 세개의 주제_재료/이치/과잉생산

1) 재료 또는 도구

예술에서 재료는 필수요소에 가깝다. 물론 개념미술이나 도구사용 없이 행위나 관념으로 구성하는 예술과 예술행위가 있다. 모든 예술에서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재료는 예술행위를 시작하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재료의 선택과정에서 예술가의 작품자체가 변화하기도 한다. 재료를 구성/조합/배열/재구조하는 사람이 예술가다. 다시말해 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예술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격을 만들어내기 힘들어진다. 재료는 예술의 본질을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원석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지만 세공을 거치면 가치가 올라간다. 사람의 손을 거쳐 가치를 만들어간다. 예술가에게 재료는 세공과정과 같다. 하지만 재료의 본질을 탐구하기 보다는 주어진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그러하다. 재료는 이미 주어진 것이며,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유통망을 타고 언제든 손에 넣는다. 이 재료가 무엇이었기에 내 손에 있는 것인지 역사를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창작에 바로 돌입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말한다. 창작을 하기 위한 준비 혹은 창작 자체에 흥미를 가지기 바론 전 단계는 재료에 대한 탐색을 하는 예술가의 행위를 교육과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문화예술교육의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학습자에게 재료 탐색은 커녕 선택의 권한을 주는 사례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교육자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이 이미 관성처럼 준비된 재료에다 도구사용을 통해 재단되고 조립 또는 조절 가능한 것이 있을 때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라는 공식이 마련되어서 그렇다. 순환랩에서는 재료란 무엇인지 추적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미 재료를 탐색하는 것 자체로도 만물은 연결되고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적하고 창작을 위한 재료를 생산해 낸다면 그 안에서 창작할 때 낭비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재료를 만든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창작과정이며, 대량생산을 통한 무분별한 소비로 만들어진 예술과 예술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된다. 순환랩의 거스르는 예술과 부들이야기는 재료에 대한 본격 탐구로 부터 모든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이해하는 것과 채취하는 모든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어떤 관점으로는 문화예술교육이 이 시대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일종의 솔루션이기도 하다.

2)이치(理致)의 경험

이치(理致)나 인과(因果)는 단지 관념으로 끝낼 경우 실천으로 연결하기 어렵다. 사고방식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의사소통의 방식이 달라지고, 인간관계의 질이 결정된다. 이치는 우리의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바로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이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이치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실천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행동이 매개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경험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순환 가능한 것은 이치와 인과를 말이미지등으로 배우고 알아채는 것 만으로는 행동하기 쉽지 않다. 가장 쉬운 예로 사람이 만들어내고 있는 쓰레기다. 쓰레기의 절대다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수단이다. 불편을 각오하면 쓰레기란 절대다수가 순환하는 자원이 된다. 필요이상의 소유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낭비다. 하지만 우리는 필요이상을 뛰어넘는 소유로 권위나 인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알고 있지만 행동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그 이유는 이치와 인과를 감각할 수 있는 경험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행위중심, 현장중심, 과정중심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을 보면 예술가의 경험으로 부터 교육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그런데 예술이 경험하게 하는 창의적 발상이나 미학적 탐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뿐, 그 원리와 배경에 대한 호기심은 부족하다. 이 역시 편의성이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기술과 작업방식 위에 자신의 발상을 얹어 놓는 것을 창작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일것이다. 순환랩에서 운영한 불로 움직이는 체스나 세종수목원의 폴리네이터 가든의 작업은 이런 이치와 인과의 경험이다. 불로 움직이는 체스에서 제작한 스털링엔진(stirling engine)은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동력기관이다. 원리를 글과 그림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열역학법칙을 수식으로 계산해 내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 피스톤의 동작을 보는데 까지 수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한다. 이것은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이에게는 단순한 원리지만, 작동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물리법칙을 체감하면서 인간 문명 전반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기술의 역사에 관심이 생기고, 그저 스쳐지나가던 세상의 모든 장치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 키네틱 아트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면 패키지로 만든 키트로 창작품에 초점이 되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폴리네이터 가드닝 역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순환의 관점을 포착할 수 있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씨를 뿌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수정(受精)은 알고 있다. 이 수정은 곤충의 역할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곤충이 언제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가 서식지를 파괴한 덕분에 충분한 개체수를 만들지 못한다. 자연환경에서 벌이 사라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인간이 설명하려고 아직도 노력중이지만, 눈앞에서 줄어들고 있는 결정적 이유는 식물의 수정매개가 되는 곤충이 충분히 먹고 살 땅이 줄어든 결과다. 인과는 이미 파악했다. 그렇게 손 놓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절멸을 지켜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폴리네이터 가드닝은 그 실천행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경험한 자는 정확히 해낼 수 있고, 효과적이다. 순환고리를 경험하면서 그 생태계를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천한다.

3) 여전히 과제로 남는 과잉생산물

순환랩을 기획하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 몇 가지 있다. 정크아트가 맨 앞줄에 놓이는 것을 경계했다. 환경과 생태문제, 기후위기등을 이야기 하면서 쓰레기와 재활용에 대한 이슈를 피할 순 없다. 더구나 정크아트는 그 행위주체인 예술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재료를 의미있게 사용하고 사회에 문제의식을 제안한다. 그래서 예술가의 행위 자체에는 적극 찬성하고, 멋지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응원하곤 했다. 다만, 정크아트를 교육프로그램으로 차용한 절대다수의 내용이 순환가능한 자원을 쓸 수 없는 자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충분히 재활용가능한 쓰레기에 접착제를 이용해 붙여서 만든 소품이나, 재활용 직전의 쓰레기를 쓸고 오려서 잉여쓰레기를 생산해 낸다. 쓰레기를 매력있는 소재와 재료로 탐구하는 작업은 거의 없고 오직 쓰레기가 사용되는 것이 절대다수의 프로그램이었다. 쓸 수 있는 자원을 쓸 수 없는 폐기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교육자와 학습자가 순환을 이야기하긴 매우 어렵다. 소비를 최소화 하는 것이나, 효율적 생산공정을 개발해야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지만 편의성 앞에서 멈추고 만다. 결국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졌다. 이런 복합문제를 끊임없이 수면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체감하는 문제를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이 건강하게 해석하고 구현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과잉생산물에 대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유쾌한 실천행위를 디자인하고 있는 피스 오브 피스의 서울아까워캠프와 제주의 재주도 좋아팀이 운영한 물살이 구조대, 남김없이는 이에 대응하고 있는 기획이다. 서울아까워캠프는 분명 쓸 수 있는 버린 물건의 쓸모를 발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한국의 모습은 고쳐쓰기 보다는 새로 사는 것이 비용면에서 더 이득으로 느껴진다. 수명을 다했다기 보다는 지겨워서 버리고, 고치는 비용에 조금 더 보태면 새것을 쓸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고치는 행위는 적극적인 삶의 행보에 해당하는데 그러기에 우리사회 현대인의 삶은 그만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환경과 문화에서 살아간다. 무엇을 하며 살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어떤 소비를 하며 사는것이 쾌적한가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스 오브 피스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실천을 하는 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가볍고 유쾌하게 푼다. 노래를 만들고 단체율동을 하며 거리 퍼포먼스에 나선다. 참여자는 퍼포먼스에서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생활 속 오브제로 재해석하고, 디자인을 생각하고, 가구나 도구의 쓰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캠페인을 벌인다. 그 행동이 마치 축제 같기도 하고, 놀이 같기도 하지만 여운의 깊이는 만만치 않다. 물살이 구조대는 제주의 바다에서 다양한 생태와 환경교육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참여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로 문제의식을 우회적으로 순화시킬 필요가 없다. 직면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비건이 되는 것을 목표로 두기보다 어린이에게 비건음식을 소개하고 함께 나눠 먹는다. 바다의 쓰레기를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 충분하기에 모든 행동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것에 민감성이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행동에 동기를 스스로 찾아낸다. 재주도 좋아 팀의 여러가지 작업 방식 중에 바다 쓰레기가 작품이 되는 과정이 있듯, 어린이의 표현방식을 찾는다. 연마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결과는 작품이 최소화되고, 쓰임이 가능하도록 전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는것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드러나는 강점이자 결과였다. 남김없이는 한정된 패브릭으로 한 벌의 옷을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려고 힘쓰기 보다 이미 연구되고 있는 패턴으로 가능성을 찾는다. 초기 기획 당시는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남김없이 모든 것을 쓰는 도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도전은 딜레마가 있다. 자투리천을 만들지 않기 위해 수 많은 자투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 패턴을 개발중이었다면, 공유된 지식과 자원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훨씬 상식적인 실천이다. 그리고 옷을 만들어낸다. 패턴은 가구조립이나 전자제품의 매뉴얼과는 큰 차이가 있다. 패브릭은 나라마다 상이하고, 두께나 직조형태에 따라 동일한 구조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개발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패턴을 적용했을 때 갖는 한계와 범용성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작업경험에 대한 대화가 오고간다. 복식문화에 대한 교육이나 워크숍을 이 팀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은 꽤 멋진 범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

5. Lab/랩

순환랩은 하나의 랩을 론칭하고 이 사업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2021년의 순환랩에서 2022년으로 이어진다면 숙제가 남은 팀이어야 한다. 즉,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는 시작과 끝이 있다. 프로젝트는 그래서 가능한 것을 실험하는 일종의 도전의식을 포함한다. 순환랩이 다양한 작업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연구, 실험을 병행하면서 프로젝트의 종료와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이 유연하게 교차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소 또는 실험실의 기능을 간결히 설명하자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실패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검증한 결과를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실행과정에서 성공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만큼이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향해간다. 과학이나 공학에서 운영하거나 아카데미안에 존재하는 랩을 지향하는 것이라기 보다 순환의 주제를 예술교육으로 해석하고/연구하고/실행하는 조금 다른 개념이 적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랩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향해가는 의미는 같다. 그래서 순환랩은 기존의 예술교육에서 교육자:학습자의 관계방식을 빗겨가며 교육행위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것을 제안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교육자의 커리큘럼을 학습자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학습자인 참여자는 랩의 연구원으로 결합한다. 연구원 개인 또는 소규모의 집단은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순환랩안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구결과를 내놓는 방식이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로 설정하기 보다 랩에서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는 모양새를 유지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계한다.

6. 2022년의 순환랩에게 넘기는 주제 또는 과제

자원의 순환과 복원, 예술가의 경험 순환, 지속가능성에 대한 탐구는 순환랩을 운영하는 철학이자 태도다. 입체로 구상하지만 여전히 평면이고, 다양성을 포함하지만 대세를 따른다. 역설과 모순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그렇다 해도 이 시도는 유효와 시대의 필요를 포함한다. 2022년의 순환랩은 그래서 자율랩의 형식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자연재해
생존방법은 어느 관점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매우 다르게 해석한다. 시간을 일년단위로 놓았을 때와 만년단위로 놓았을 때는 확실히 다른 것 처럼. 우리에게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은 자연재해의 목격이다. 인류 또는 문명이 만든 재해가 아니더라도 환경의 변화에 의해 생존가능성 생각해 보면서 환경문제와 기후위기등의 재해를 해석하며 학습할 수 있다. 경주와 포항의 지진으로 인해 지역 활동가들은 재난대비 매뉴얼을 제작 배포했다. 문화예술교육이 재난대비 매뉴얼에 접근해 보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2) 산업폐기물
아무리 꼭 필요한 생산을 하려해도 그 공정에서 탈락하는 폐기물 또는 부산물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윤을 만들어가야 하는 기업에게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이 대응으로 구조화된 놀이감을 비구조화하는 실험을 하는 팀이 있다. ZA_ONE이라는 팀이고, 현재 비영리스타트업으로 등록해서 활동을 시작하려는 중. 공장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을 또 다른 제작과정을 최소화하여 구조화된 매뉴얼놀이에서 어린이를 해방(?)시키려는 시도다.

3) 에너지생산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에서 다루기 힘든 것이기도 하고, 기획과 연구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종사자의 규모나 전문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간혹 적정기술로 소개하긴 하지만 적정기술에 접근하려다 오히려 자원과 인력낭비를 만드는 사례나 자본획득의 미끼로 삼는 일이 늘어나다 보니 윤리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모잠비크등의 나라에 설치했던 플레이펌프가 있다. 결국 이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자본을 끌어다 쓰고는 버려지는 결과가 되었고,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수용력을 발휘하기 까지 생각하기 보다 실행을 앞세우다 보니 생긴 결과다. 그래서 이런 전철을 밟는 것 보다 대체에너지 연구와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라셀(태양열집열판)을 생산하고 운영하는 기업의 연구소와 협업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국기업으로는 한화의 큐셀이 있다.

4) 식/의/주
문화예술교육에서 식/의/주를 공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순환랩의 철학과 닮아 있다. 공격적으로 다룬다는 의미는 그 본질을 탐구하겠다는 의지를 말한다. 쓸 수 있는 자원이 한계가 있을 때는 부족함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쓸 수 있는 자원 탕진(?)을 목전에 둔 지금은 차원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즉, 생존의 방법에 대한 것이다. 생존을 위해 먹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고, 안전을 위해 집이 필요하다. 채취, 보관, 가공, 적응등이 키워드가 될 것이다.

7.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칼 세이건은 저서인 <창백한 푸른 점 The Pale blue dot>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가장 와 닿는 표현은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한다는 것. 1990년 보이저1호가 보내온 지구의 모습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고,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버텨야 하는 땅과 물과 하늘을 아주 빠른 속도로 ‘버틸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문화/예술/교육은 풍요 또는 여분 위에 자리를 만드는 것에 익숙해 있다. 이 리포트에도 반복하며 강조했지만 안다고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점이 생겼다고 해서 그 실천을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이 어째서 풍요로운가 반문한다면 지금 이 위기의 시대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는 의문은 가져 볼 만하지 않을까. 그래서 뻔한 강조라고 해도 다시 할 수 밖에 없는 것. 풍요와 여분이 아니라 부족과 한계 위에서 이 시대의 문화예술교육을 위치시키는 도발(挑發)에 가까운 시도가 필요해졌다.

링키

ARTICLE 2021-12-28

현대 제로원의 요청으로 기고한 글. 링키라는 키네틱 토이인데 상당히 흥미롭다. 단순한데 충분하다. 대부분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패키지는 과잉친절로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링키는 그런 점에서 좀 좋았다. 대박났으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이 반, 한국에 부모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과잉을 선택해야 팔리나 하는 생각이 반이었다. 아무튼 응원.


LINKKI, a kinetic toy

김탕(PaperCompany_Urban 큐레이터)

귀신이 무서운가. 만약 무섭다면 그 감각의 실체는 무엇일까. 깜짝놀라는 것이나 패닉이 아니라면 무서움은 일종의 심상이다. 그럼 질문을 바꿀 수 있다. 귀신을 봤기 때문에 무서운 것일까 귀신이 나올까봐 무서운 것일까? 절대다수에 가까운 사람들의 이유는 후자에 해당한다. 인간은 ‘모르는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물론 알게되었을 때 더 무서워지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공포의 질감은 확연히 구별 할 수 있다. 대상을 인지하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고, 이는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의해 안전 또는 안정감을 얻는다. 그래서 대상을 예측 가능한 범위에 두고 내가 직접 취급(handling)하려는 욕구 안에는 ‘알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자리한다.

LINKKI는 모듈로 구성된 창작도구다. 도구는 어떤 시기에 특별히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표준을 따른다. 수동 또는 전동 드라이버는 판매하는 거의 모든 나사에 들어 맞아야 한다. 효율적이어야 하기 때문이고,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표준은 온라인에서도 그러하며 도시계획도 적용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면 창작도구는 성격이 다르다. 기초가 되는 도구 적용은 표준을 따르지만 오히려 결핍과 부족을 디자인하는 것이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법이다. 필요가 생산해 내는 상상력에 가깝다. 더구나 교육을 위한 창작도구를 구상한다면 가용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거나,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 몰입하는 경험 영역을 디자인하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링키에 주목하자. 영,유아기를 벗어난 어린이는 크다/작다에 대한 인지로 부터 통제가능성을 찾는다. 오브제와 도구의 활용이 손안에서 시작하고 팔 둘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능한 범위안에 위치하면서 통제의 안정감을 찾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단지 어린이 만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노작(hands on)은 작업 및 교육의 시작단계에서 스케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작동한다. LINKKI의 구성을 보면서 노작과 움직임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살펴보게 된다. LINKKI는 크게 조립/해체/움직임의 순서로 창작과정에 개입한다. 첫째는 조립이다. 기준이 되는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조립가능하다. 매뉴얼에 따라 기초 디자인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조립은 창작의 기준점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조립을 통해서 획득한 결과가 완벽하거나 근사한 작업이어서는 안된다. 디자이너의 의도 역시 그에 주목한다. 그래서 키트Kit라는 표현이 조심스럽고 꺼려진다. 하나의 키트는 최종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 그 과정은 키트의 제작자에게는 의미 있는 학습이 가능하지만 키트 사용자는 완성한 제품을 가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LINKKI가 키트가 아닌 이유는 조립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작업의 ‘방향’을 가리킨다. 어떤 움직임이 가능할 것인지, 오브제가 수직운동으로 전환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원리가 무엇인지 찾아가야 한다. 두번째로 선택적 해체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이 노작과 결합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으라면 단연 해체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LINKKI는 복잡한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해체가 어느정도 생략될 수 있다.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재조립 정도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균일 크기로 배열한 펀칭보드에 다른 오브제와 부속물(parts)이 결합될 수 있도록 탈착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유효하다. 셋째로 움직임이다. 어떤 의미에서 LINKKI의 목표와도 같다. 하지만 움직임은 스토리를 동반한다. 왜 움직여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기 때문에 생성되는 스토리가 보드위에 전개되어야 한다. 이는 LINKKI가 워크숍을 통과하면서 교육도구로써 즐거운 접점이 된다. 스토리는 동일한 재료와 도구에 의미를 덧입힌다. 그리고 단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 된다. 자기표현을 위한 도구라고 과하게 포장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미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이며 표현이다. 단지 무엇을 매개로 하는가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가 풍부해 진다.

LINKKI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스토리의 능동협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워크숍에서 개별창작품이 개별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을 하거나 동시에 작동하는 연결된 구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큰 강점은 역시 가볍고 간단하지만 움직임의 원리만 이해하면 얼마든지 결합가능한 구조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동화를 시도하는 것 역시 매력있는 요소 중 하나다. 블럭코딩으로 마이크로비트를 이용하거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구입가능한 모터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LINKKI를 사용하게 될 대상이 아동/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에게 가장 익숙하나 응용력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던 도구를 배우며 적용해 가는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단계로 호기심의 방향이 정해지면 더 복잡한 방법과 도구를 탐색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키네틱이나 로보틱스등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현상과 물리법칙을 알게된 인간이 문명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지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노작과 STE(A)M이 갑자기 화두가 된 것은 아닌 것과 흡사하다. 이미 우리는 문명과 예술이 어떤 경로로 지금 현재 이 자리에 놓여지고 있는지 성찰하는 가운데 이런 작업을 소개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현재 우리사회는 교육 방법론이 넘치고 재료와 키트, 매뉴얼이 흔하다. 아동/청소년이 무엇을 배우고 알게 되는지 보다 그들의 보호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광고카피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다시 귀신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는 것은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모르기 때문에 궁금하고 두렵기 때문에 알아내려는 의지가 생긴다. 결정적 포인트는 결국 완성가능한 경험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불완전한 요소를 어떻게 노출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창작을 위한 호기심과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 과정에서 오는 몰입과 희열의 경험, 표현을 위한 매체 선택의 경험이 열리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OK, Computed

ARTICLE 2021-12-27

드림아트랩의 2021년을 마치며 기고한 글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된 돌멩이는 규칙을 품고 있었다. 셈을 위해 돌멩이를 이리 저리 옮겨가며 효율적으로 표시하려 했다. 그 셈을 위한 규칙은 장치가 되고 표준을 정하며 훗날 주판이 되었고, 그 주판은 계산을 위한 보다 정교한 기계장치로 만들어져갔다. 지금이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현대의 컴퓨터는 그렇게 태어났다. 컴퓨터의 어원은 익히 알려진대로 계산원을 가리키는 일종의 직업이었다. 물론 컴퓨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가/감산 정도의 일이 아니라 꽤나 복잡한 연산과 기하를 포함하는 계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재능과 더불어 오랜 수련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를 기계장치인 컴퓨터에게 내 주는데 그리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이미 정해진 일인 양 받아들여졌다. 컴퓨터와 사람의 인연(?)을 극단적으로 짧게 정리하자면 그렇다. 마치 운명처럼 사람이 그 역할을 내 주는 것을 비관이나 염세로 몰아갈 필요까지는 없다. 역사와 문명은 근력과 능력의 비운곳을 채우고, 효율을 찾으며 달려왔으니 말이다.

2021년 드림아트랩이 끝나간다. 복합과 유기적이어야 완성되는 목표를 제시하다보면 반드시 빈 구석이 보이게 마련이고, 대립하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는 기술/예술/정보/배움/작동 등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상이한 목표를 포괄한다 해도 드림아트랩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새로 등장한 정보나 언어가 표현의 매개를 변화시키고, 적극적으로 기술과 매체를 받아들인 예술가에 의해 표현의 다양성과 시대의 특징을 드러냈다. 이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다양하다. 특정하기 힘든 모두를 대상으로 두기 보다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했기에 랩이 형식으로 차용되었다. 이미 이 글의 시작에서 바빌로니아인이 배열한 돌멩이는 선명한 필요를 느낄 수 있다. 필요가 불러온 도구와 매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속력을 만들고 시스템을 변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필요로 선별할 것에 대한 안목이다. 2019년과 2020년에 드림아트랩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개념과 매체가 언어로 가장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Metaverse나 NFT가 그렇다. 80년대 초반 루카스필름 게임즈가 만든 하비타트는 게이머가 사이버 카페에 모여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린든랩의 세컨드라이프가 등장했을 때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단지 훔치거나 베낀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기의 필요와 만나지 못하거나, 물리적 한계와 정보처리를 위한 환경과 도구가 없다면 구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분산컴퓨팅이 블록체인을 본격화 하면서 만나게 된 화폐는 사회가 무엇을 기준으로 가치를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과학과 기술이 응답한 대안이거나 제안이다. 여기에 희소성이나 저작의 권리등이 결합하면서 복제불가능한 예술가의 본질적 표현이 티지타이징(digitizing)된다. 이 두가지 예에서 ‘돌멩이의 필요’는 무엇일까. 소통과 가치교환에 대한 의지다. 이때 교육의 혼란은 것은 돌멩이 사용법인가, 돌멩이를 놓기 위한 규칙을 디자인하거나 선택하는 것인가에 놓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명료하다. 필요는 배움의 동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드림아트랩에서 우리가 만난 대상은 아동과 청소년이다. 그래서 간혹 새로운 매체와 놀이를 충분히 즐기는 것을 통해서 배움이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통한 호기심과 동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작용이 있다. 그렇다 보니 놀이에 경도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인과관계의 딜레마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다. 놀이를 디자인하고 놀이의 장에 아동/청소년을 위치시키는 것은 현재를 사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구조를 만드는 것은 기획자의 일이고, 실행하는 것이 아티스트와 교육자의 일이다. 하지만 다시 컴퓨터를 떠올려 보자. 사람의 자리를 어떤 장치에게 넘겨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사람에겐 새로운 역할이 생기지 않는가. 사용자의 위치에서 즐거운 문화경험 역시 중요한 한 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드림아트랩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는 컴퓨터에게 내줄 것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힘이 아닐까 한다. 결국 기술의 본질과 원리를 탐구하는 능동적 의지를 찾아 가는 것이 가능한지 시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OK, Computed.

위생의 패러독스, 일회용.

ARTICLE 2021-12-15

호텔에서 스위트나 콘도, 팬션을 빌리면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사람들 행동.

그 누구도 위하지 말고 나를 위한 실천_

ARTICLE 2021-11-09

청소년은 내일의 주인공이라는 언어는 이제 낡았다. 내일은 관념이지만 오늘은 현실이며 ‘나’를 직시하게 만든다. 청소년정책과 사업은 마치 청소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던 시대가 전환되는 이유도 그와 유사하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해결과제 또는 현재의 삶에 대해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기가 이미 찾아왔다. 1992년 UNFCCC(UN기후변화기본협약)은 지구온난화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각국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며 시작했다. 선행연구가 밝혀낸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심각성은 세계적으로 이미 30년전부터 발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구온도는 이미 상승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를 만난다. 정치/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세계의 무역과 시장은 더 많은 생산량을 선점하려고 했을 뿐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감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생태계의 깨져버린 링크와 인류의 생존문제가 그 어떤 위기보다 최상위가 되었다. 불특정다수의 대중에게 전하는 미디어는 여과한 정보로 위기를 순화시켜 왔다. 대중적 공포를 조장하며 패닉이 만들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었지만, 2021년 현재를 살아가면서 더는 숨길 수 없어질 만큼 기후-환경-생태계의 순환고리가 회복사이클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정보로 노출된다.

2019년 UN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6세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은 과감하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꿈과 어린시절을 빼앗았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라고 소리쳤다. 각국 정상이 지속가능한 경제에 대해서 떠들고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고 싸우는 동안 청소년에게 지운 재앙에 대한 질타였다. 지금의 위기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을 포함한다. 이 공포는 아동/청소년에게는 앞에 놓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문제의 핵심인 기존 질서와 맞서야 하는 행동으로 치환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아동/청소년은 행동주체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제도교육의 관성이 그러하고, 산업에 가까운 사교육시스템이 강고하다. 여전히 초유의 관심사가 입시의 관문을 통과해야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강력한 힘이 작동한다. 그래서 바로 앞에 놓인 재편되는 세계에 대응할 능력과 기술로 부터 동떨어져 있다. 지금 시작해도 늑장대응이 될 생태와 환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실험의 장에 청소년은 항상 뒷전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 화석연료의 사용. 에너지전환시나리오. 탈탄소화관점. 이런 키워드를 이 위기를 만든 세대들의 손에 맡겨 놓기에는 불안해야 마땅하고 행동으로 전환해야 하는 때다.

알면 알 수록

ARTICLE 2021-10-08

기후위기와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예술교육 실험실인 '순환랩' 사업을 위해 자료를 찾고, 논문을 읽(어낼 수 없는 연구가 다수)고 다큐멘터리나 위키리크스를 뒤졌다. 알면 알 수록 암담하기만 하니까 공부를 멈추고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야 했다. 뭐 하나 먹을거리도 안전하지 않고, 걸어다니면서 보이는 모든 풍경에도 비위가 넘쳐났다. 삶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차고 있으니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참 한심해지더라.
우리나라에서 생각보다 답이 분명하고 당장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한반도 운하건설을 목표에 두었을 거라고 의심하는 4대강 사업이다. 현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는데 결국 해낸게 거의 없다. 강물의 흐름만 만들어도 생태계의 순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그나마 열린다. 뭘 더 할게 아니라 인간이 가둔 물구덩이가 된 강. 그래서 보 해체하는게 그리 힘든 일인가. 답이 나와 있지만 할 수 없는 일 투성이인건 알겠으나, 당장 썩은 물 마시고, 피부조직을 망가뜨리는 샤워를 하고 있으면서도 미적거리는 건 여전히 미스터리다.
몇 달 전부터 낙동강 주변에서 나온 농산물을 사먹지 않는다. 대구나 부산에 출장가면 가급적 음식을 피하고, 당일에 다녀오려고 한다. 피곤한 것 보다 상위의 스트레스가 된 셈. 알면 알 수록 더 삶이 괴로운데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게 가장 싫다.

예술교육이 말하는 순환 + 연구실(제안서의 일부)

ARTICLE 2021-08-31

1 Overview

‘00의 시대’라는 말은 때론 거창하게 들린다. 전환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이념과 구조가 바뀌는 변화의 시대를 말했고, 기술과 과학이 산업의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빅데이터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때는 데이터 테크놀로지 시대가 도래한다고 들떠서 말한다. 다행히도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단어의 조합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인류문명이 산업자본과 결합하면서 환경은 급격히 황폐화의 가속이 붙었다. 우리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이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어감의 시대다. 기후위기시대나 에너지고갈시대가 그렇다. 변화가 아니라 위기이며, 부족이 아니라 고갈이다. 분명 누군가는 이런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은 정치적 도구로 사용 중이라 말할 것이며, 인간의 기술은 여전히 대안을 찾아낼테니 기다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과학자가 건조하고 냉소적으로 이 상황을 전하고 있으며 체감할 정도의 변화를 목격하는 이 시대에 예술과 예술교육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때론 강렬한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영적 소통이나 신앙의 증거로 종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통찰의 시선으로 사회에 말을 걸며 날카로운 비판을 상징과 은유의 코드로 풀어냈다. 지금 우리시대의 예술은 그래서 지구의 재앙에 대한 경고를 담기도 하고 인식의 프레임을 전환하려 노력한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주제의식이 예술의 한 영역이나 장르로 파고들기 보다, 이 시대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예술가의 작업은 선언이 되기도 하고 액티비즘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예술교육은 이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2 순환/지구력

지구를 살리는 00, 소소한 실천. 이런 식의 글귀 또는 주장을 간혹 만나게 된다. 지구를 소유한 것이 인간이라는 오만함은 아닐까하는 논리적 의심과, 작은 실천이 아니고 작정하고 실천해도 모자라는 것이 ‘위기’에 대한 태도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순환은 그저 자연스러움으로 회귀에 대한 실현계획을 만들어가는 키워드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속되며, 냉정하리만큼 모든 것을 소비하고 다시 자원이 되는 시스템으로 수십만년 유지해왔다. 그 생태계 안에서 인간이 존속해 왔으나,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끊으면서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생태에 득이 되는 소멸과 조합의 과정을 사멸과 해체에 가까운 물질로 변환시켜가며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고 버려왔다. 모든 것이 인간에게 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공중위생은 획기적으로 나아졌으며 수명이 연장되기도 했다. 더구나 대륙을 넘나들며 교역과 문화교환으로 더 풍족(?)한 문화와 예술의 생태계가 생겼다. 하지만 순환을 가로 막은 대가가 따른다.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말해야 하고, 소소한 실천과 소비방식의 패턴을 바꾸기 보다 생산과 필요의 균형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어야 한다. 순환랩에서 지칭하는 순환은 크게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원의 순환. 남김없이 사용하기 보다 필요에 대응하며, 자원은 어떻게 순환하는지 살펴보면서 이 시대의 예술교육 지향점을 찾는다. 2) 예술가의 경험순환. 인간은 문화를 전수한다. 경험이 순환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정한 기술의 노하우등을 말하기 보다 예술가는 어떤 경험을 공동체에 전하고 있으며, 그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공유할 가치를 탐색한다. 3) 회복(탄력)가능한 순환. 흔히 지속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이때 누가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를 모호하게 설정하면 곤란하다. 예술교육이 지구력과 회복력을 가지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작업할 것인지 실천 연구와 실행을 병행해야 하는 시기다.

3 연구실/Lab/랩

랩은 연구소 또는 실험실이다. 그래서 랩에는 가설을 세운 설계자가 있고, 그 가설을 검증 또는 입증해 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학습결과를 얻는다. 얼마전에 내가 설계자로 일하던 랩을 나왔다. 더 이상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랩에서는 가설을 세울 필요가 없어져서다. 무늬만 랩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곳에서 일하려면 호기심과 지적욕구가 동기로 매개하지 않는 한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QUIT! 그래서 올해는 프로젝트에 가까운 랩을 운영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시작하는 랩은 본격 연구나 실험을 하는 랩을 지향하는 것이라기 보다 순환의 주제를 예술교육으로 해석하고/연구하고/실행하는 조금 다른 개념이 적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랩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향해가는 의미는 같다. 그래서 순환랩은 기존의 예술교육에서 교육자:학습자의 관계방식을 어느정도 빗겨가며 교육행위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구조를 제안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교육자의 커리큘럼을 학습자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학습자인 참여자는 랩의 연구원처럼 결합한다. 연구원 개인 또는 소규모의 집단은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순환랩안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구결과를 내놓는 방식이다. 순환랩은 총 6개의 랩으로 운영한다. 주제와 형식과 참여방식, 최종 퍼포먼스 형태가 모두 상이하기 때문에 같은 프레임으로 적용할 이유가 사라진다. 각 랩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인원수와 미팅방식등이 따로 정해지면 된다.

-------- 이후는 사업계획이므로 생략.

굴포천 낚시

ARTICLE 2021-08-11

자주 만나지 않아도 안부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친근감이 드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윤종필작가가 그렇다.
작년에 주민들하고 판화작업을 진짜 신나게 하더니 전시를 열었다.
당연히 보러갔는데, 그 중 한 작품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늘 집에 왔는데 문앞에 지관이 배달되어 있다.
뭔가 했는데 그 작품이다. 굴포천 낚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작품을 돈주고 사야 제맛이다.
선물이라고 우기지만 내가 뭔가 꼭 대가를 치루게 하고 말겠다.
윤종필 좋다. 만나서 얘기하면 진짜 낄낄대고 한참 웃고 헤어지곤 한다.

선택

ARTICLE 2021-08-09

살다보니 대부분의 선택은 A와 B중에 무엇을. 또는 A/B/C...n중에 무엇을 선택하기 보다 A를 취할 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86세가 된 할머니가 90세가 된 할아버지와 동거를 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한다.
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나이랑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대로 해야 한다고 말해드렸다.
그 선택과 결정에서 왜 타인이 개입 하는가.
아들이 어쩌고, 며느리가 어쩌고, 주변인들의 시각이 어쩌고.
90세 할아버지가 느끼고 있는 연애감정이 부럽기만 하고,
동거를 결정하려는 할머니의 고민은 귀엽게 느껴지기만 한다.
여기서 타인은 그들의 결정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참 인간관계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영향을 주고 싶어 안달이다.
나이들면서 나도 그러고 있을 때 깜짝 놀란적이 많다.
조언의 대가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건 진짜 무서운 일이다.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팀에게 보낸 레터

ARTICLE 2021-07-15

어떤 팀이 올해 청소년을 위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관습적으로 꿈을 묻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결정인지 걱정이 앞섰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배경에 무엇인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반드시 꿈과 희망을 가졌으리라고(또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판단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팀과 세번의 회의를 했고, 레터를 보냈다.

그 레터의 일부다.

세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합니다. 청소년과 이런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사회의 교육은 흔히 말하는 입시와 경쟁으로 요약되곤 합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대다수의 아동과 청소년이 포함된 공교육에서는 과도한 경쟁이 유발되거나,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으로 우리가 사회교육의 범위를 너무 축소하게 되는 것은 틀립니다. 교육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공교육에서 입시와 경쟁을 말하게 됩니다.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비판속에서도 입시와 경쟁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 것까요. 한정된 자원과 기회의 획득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일 겁니다. 청소년기는 자기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임에 분명하지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즉, 꿈을 가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는 것은 고약한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정해진 길 위에서 걷거나 뛰기도 바쁜데 어디로 가는 지 묻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그 질문이 필요없진 않습니다. 다만, 어디로 향하는지 목적지를 정하고 난 뒤에 길을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 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곤 합니다. 진로탐색이라는 언어가 그렇습니다. 다수의 진로탐색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직업군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이 합당한가를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꿈은 어떤 직업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곤합니다. 현재 기회중인 동사형꿈이나 형용사형꿈이라는 것에서는 진로탐색이라는 어휘선택이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는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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