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연기

ARTICLE 2022-08-11

식물을 키우면서 그 동안 알고 있다고 착각한 '자연스러움'에 대해 한 수 배운다. 50년을 넘게 살면서 식물을 제대로 키워 본 적이 없었다. 선물 받은 화분은 항상 테라스 한켠에서 말라갔다. 너무 삭막한 집안 환경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기 위해서 식물을 장식했을 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식물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는 휴식을 취하고 싶을 뿐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던 시기에 식물은 구경의 대상이었을 뿐이지 생명으로 대하지 않았다. 재택의 시간이 많아지자 식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강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순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화분 밖으로 나온 잎이 식물의 전체가 아니라 뿌리가 있다는 그 당연한 이치를 그 동안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흙을 손으로 만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을 때 부터는 식물의 크기가 뿌리를 포함한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했다. 결국 식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은 흙과 미생물, 물과 바람, 빛과 온도. 써놓고 나면 복잡하지만, 실제로 인간이 가장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해 보면 비슷하다. 볕이 잘드는 집에 환기를 자주 하면서 쾌적한 습도를 조절하는 것은 내 컨디션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였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만약 자연환경에서 지금 키우는 식물들이 산다면 어떤 조건일까 생각하면서 조건을 만들면 성장과 번식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화분이라는 공간 제약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적잖은 폭력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나의 기준과 원칙에서 타협이 크게 힘들진 않았다. 온실을 만들어 열대식물을 가두지 않는다거나, 내가 보기 좋은 수형을 잡기 위해 철사를 동원하여 인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간다거나 하는 그런 행위는 하지 않기로 한다. 시들어 가지만 생명의 순환을 볼 수 있다면 수 개월에서 수 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자연스러움은 없다. 수 많은 미생물과 섞여서 살아가고, 공생의 조건을 만들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퍼뜨리고, 꽃과 열매로 번식을 하지 못한다. 결국은 내 타협점에 셀 수 없이 많은 오류와 모순이 생기는 것.

자연스럽다는 것은 나에겐 매우 중요한 삶의 원칙임에 분명하다. 자기존중감을 갖기 위해 연기를 하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특히 좋은 리더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역겹다. 그냥 표현이 아니라 정말 토하기 직접까지의 감각이 느껴진다. 이 역한 느낌이 무엇일까 고민의 결론은 부자연스러움이다. 꽤 많은 곳에서 보이지만 적절한 선에서 무시하거나 피한다. 아마도 스스로가 가장 부끄러워야 마땅하겠지만 간혹 메소드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침없다. 맞서지 않고 피하는 이유다. 좋은 리더는 흔하디 흔한 언행일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가능하다. 리더 연기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내 뱉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에 대한 책임감을 어필 또는 주장한다. 행동이 아니라 말로 때우는 것. 그게 리더 연기자의 가장 역겨운 모습인데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바로 드러난다. 자기만 모르는 천박한 인식은 동화속 벌거벗은 임금과 같다. 연기로 해결할 수 없다면 자연스럽게 무식함이 들통나거나, 술수가 드러나 거짓해명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늘 조심하곤 있지만 가끔 피하다가도 만나면 참 기분이 더럽다.

저급한 입시 컨설팅의 기억

JOB SOUND 2022-08-04

2010년대 초반. 기가막히 전화를 받은 기억이 있다.
무슨 무슨 입시학원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당시에도 보이스피싱이 있었기 때문에 끊으려고 했는데 조금 더 들어보니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이름과 주민번호 정도의 개인정보가 아니라 나름 열심히 조사해본 느낌 같았다. 요지는,
내가 기획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청소년이 참여하게 해달라.
기획단(?)처럼 자신이 만들어서 나에게 붙여주면 한번 만나도 되고 이메일로만 내용을 주고 받아도 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기획자로 고등학생들 이름만 넣어달라는 것.
뭐 어쩌고 저쩌고 더 말이 많았지만 요약하면 그렇다.
5-6명 정도 명단을 줄 것이고, 나는 도장만 찍어주면 머릿수에 따라 수백만에서 수천까지 돈을 주겠다는 것.
화가 났지만 이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자세히 물었던 것 같다.
물론 전화를 끊으면서 정신 차리라는 취지를 말하긴 했다.
생기부에 몇 줄을 남기기 위해서 컨설턴트가 나서고, 그 몇 줄은 돈으로 계산되고 있었다.
요 며칠 교육부장관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능력주의, 공정성, 절차의 정의...등등은 결국 돈앞에 무릎을 꿇는다.

순환랩_2022

ARTICLE 2022-07-27

1. Overview_문해력(literacy)에 대한 순환랩의 입장

  • WMO는 2022년 5월 업데이트 보고서를 냈다. 기후위기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1.5도를 기준으로 세운 후 수 많은 석학이 참여해 분석한 결과다. ( https://hadleyserver.metoffice.gov.uk/wmolc/WMOGADCU2022-2026.pdf )
  • 전세계 언론이 주목한 것은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이었다. 상징과도 같은 ‘1.5도’는 2022년에서 2026년사이 즉, 5년내에 1.5도 상승을 절대적으로 예측하진 않았다. 하지만 냉정한 경고는 48%의 가능성이었다. 5년내에 1.5도 상승의 가능성을 48%로 예측했다. 이전 5년에 1.5도 상승의 가능성은 10%의 예측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결과가 아니라 말하기 힘들다.
  • 식량 또는 식품의 위기는 코 앞에 다가왔다. 브라질은 가뭄으로, 콜롬비아는 폭우로 커피생산량이 급감했다. 전세계 감자생산량 2위인 인도는 폭염으로 인해 수출길이 막혔고,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따른 곡물생산은 인류의 생존문제에 대한 본격 경고가 시작되었다. (그린피스의 기후위기 식량보고서 https://www.greenpeace.org/static/planet4-korea-stateless/2022/02/5acb70fc-기후위기-식량-보고서-—-사라지는-것들의-초상-—-식량편.pdf ) 초연결시대라는 말은 디지털이나 온라인 기반의 관계망을 먼저 떠올리지만, 식량 위기의 도미노를 보면 지구인의 분업이 얼마나 촘촘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는 지구 반대편 기후의 변화로 무너진 한개의 조각으로 인해 생존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따위의 문제로 해결가능하지 않다. 기후는 지구전체의 초연결성이라는 대 전제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막연히 ‘인간은 기술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안일한 대응을 펴고 있는 이유는 거대자본과 산업종사자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본다. 만약 수질오염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세탁기가 개발되어 세제를 전혀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그 기술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전세계 수천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져야 하고, 그와 연관된 생산관계망이 사라질 것이 예상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말이다. 전환의 순간이 각인되고 감각으로 위기를 이미 마주했다 해도 촘촘한 사회구조 안에서 선택은 바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 흔히 말하는 다음세대는 앞으로 인류를 위한 생산수단을 관리 또는 분배하면서 생산력을 획득하여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다음세대에게 생산력을 주도 할 수 있게 건네주어야 가능한 것이 생존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면 실천의 범례를 제시하거나, 객관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교육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다시 강조할 이유가 없다.
  • 최근들어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전 세대를 통틀어 정보의 선별 능력과 해독력 저하를 사회문제라고 지적한다. 문맹이 사라진 한국에서 이른바 리터러시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사회는 더욱 세분화되고 복잡해 졌기에 학습가능한 정보와 해석을 더욱 요구한다. 기후위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수 없이 많은 현상과 지표를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누군가의 요약에 의존해야 한다. 요약은 본질을 흐리기 쉽기 때문에 위험하다. 소셜미디어와 뉴스의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그저 막연한 공포 이상의 것이 되지 않는다. 막연하다는 것은 무엇을 할것인지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상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행동으로 연장하려는 개인의 시도는 누군가가 ‘이렇게 하라’는 요약본의 지시사항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강도높은 실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비닐쓰레기를 줄인다며 사들인 토트백과 장바구니, 1회용컵을 쓰지 말자며 집에 쌓여가는 텀블러의 숫자가 그 예다. 그 결과 비닐쓰레기가 줄지 않았고, 1회용 컵의 생산이 멈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실천을 하는 개인은 공장을 통과한 토트백과 텀블러가 만들어내는 탄소배출에 대해서는 외면한다기 보다 상상하기 힘들 뿐이다. 이것이 리터리시의 문제다.
  • 문화예술교육에서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순환을 다루는 것은 결국 리터러시를 기반에 둔다. 행위는 문화와 예술에 범주에서 일어나지만 순환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철학을 탐구하며 행동원칙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2년의 순환랩은 연구주제를 설정한 각 지역의 랩이 참여자(연구자, 실험주체)가 문제의 본질을 탐색하고 행동의 원칙 만들어가기 위한 예술행위와 문화행동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한다.

2. 순환_닫힌고리와 존엄성

  • 2021년 순환랩의 키워드는 자원/경험/지속성(회복력)이었다. 하지만 주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각(死角/blind spot)이 존재한다. 세가지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2022년은 사각에 대한 탐색을 병행한다.
  • 19세기와 20세기는 무한할 것이라 여겼던 자원을 취하며 문명을 건설했다. 하지만 자원은 생산-소비-폐기의 선형성에 대한 위험은 이미 20세기 말에 지적되었다. 닫힌 고리는 배리 커머너의 1971년 저서 the closing cicle(국내에는 ‘원을 닫혀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순환에도 원리와 원칙이 필요하다. 예술교육에서 닫힌고리는 거의 실천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생산과 폐기에 집중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작품활동은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해도 예술교육은 그 소비를 폐기로 아낌없이 보내면서 에술을 설명하려한다. 예술과 예술행위, 예술교육이 이 닫힌고리 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일까가 순환랩에서 탐색해야 하는 과제다.
  • 두번째는 경험이다. 경험은 (리빙)랩이라는 형식이 주는 특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화작업자나 예술가가 주도하지만 그 랩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현장의 경험을 나눈다. 기존 예술교육의 방법론이 마치 학교교육의 커리큘럼을 모방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연구방식과 실천과정을 랩으로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은 공동경험을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최선에 가깝다. 그로인해 경험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형식실험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두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령의 경험과 탈형식에 대해 충분히 열려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문화작업자나 예술가의 경험을 순환하면서 동시에 처음 경험하는 참여자의 신선한 시각(또는 초심자의 실수와 오류)이 경험으로 남는 것이 과제다.
  • 마지막으로 존엄성에 대한 키워드다. 순환랩에서 등장하는 존엄의 키워드란 무엇일까 연상하기 힘들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인간 개인은 모두가 존엄성을 인정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은 관념이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반면 위기의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 존엄에 대한 모든 것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경중(輕重)이나 우위(優位)를 중심에 두고 행동한다.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집단이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전 집단 무의식이나 본능이라고 포장된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전쟁이나 재난의 상황에서 이 존엄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인간이 유발한 자연의 대답이다. 우리가 예측가능한 위기상황에서 존엄성에 대한 탐색이야 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절실하게 받아들여 생각해야 할 과제다.

3. Lab/랩

  • 랩은 연구소 또는 실험실이다. 본격 연구나 실험을 하는 랩을 지향하는 것이라기 보다 순환의 주제를 예술교육으로 해석하고/연구하고/실행하는 조금 다른 개념이 적용된다. 하지만 랩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능성을 향해가는 의미는 같다. 그래서 순환랩은 기존의 예술교육에서 교육자:학습자의 관계방식을 빗겨가며 교육행위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교육’이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상호관계에서만 ‘배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의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형식실험을 병행한다. 교육자의 커리큘럼을 학습자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학습자인 참여자는 랩의 연구원으로 결합한다. 연구원 개인 또는 소규모의 집단은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순환랩안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구결과를 내놓는 방식이다.
  • 순환랩은 총 5개의 랩으로 운영한다. 주제와 형식과 참여방식, 최종 퍼포먼스 형태가 모두 상이하기 때문에 같은 프레임으로 적용할 이유가 사라진다. 각 랩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인원수와 미팅방식등이 따로 정해지면 된다.

뉴스나 소셜미디어

JOB SOUND 2022-05-21

소셜미디어와 뉴스를 안보고 산지 2년이 되어 간다. 지인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속에서 내가 당연히 알것 이라고 생각하고 생략하며 이야기 나누는 일이 잦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듣고 넘어가는 일이 주로 많지만, 가끔 대화의 맥을 잘 못 잡거나 중요한 경우에는 내가 모른다는 걸 말해 줘야 한다. 뉴스를 끊고 나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만한(또는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될)사건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 정보를 기반으로 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단절되는 것은 스스로 어렵게 살겠다는 선언과 같다. 정보를 얻는 방법이 제대로 알거나 전혀 모르거나로 양분 되는 것이 목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정보는 지인들과의 만남이나, 공적인 회의에서 접하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피로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보를 선택하는 것 밖에. 정치인, 연예인, 사건사고의 절대다수 이슈가 진짜 인지 확인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 속에서 나온 정보다. 소셜미디어는 지인의 정보인듯 보이지만 끝없이 광고에 노출되거나 지극히 편향적 정보로 빨려 들어가게 짜여져 있다. 나처럼 하라고 말하고 싶어도 강요할 순 없고, 자본에 종속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란 탓에 이젠 좀 둔감해졌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는 편은 아니다. 무엇에 감동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타인의 취향과 비교하며 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말하고 까다롭게 고른 와인을 마시는 건 즐겁다. 굳이 평점 높은 음식점을 찾기 보다 내 취향을 아는 지인의 경험으로 추천받는게 당연히 좋은 법이다.

기성복(?)의 미스테리

JOB SOUND 2022-04-29

오랜 미스테리다.
디자이너들은 왜이러는지.
바지를 살 때 길이에 맞추면 허리가 크다.
허리에 맞추면 길이가 짧다.(같은 말인가?).
아무튼. 살찐 사람들이 길고 긴 바지 길이를 줄여 입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자주 본다.
키큰 사람들이 허리가 굵을 것이라는 통계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발상인가 모르겠다.
길면 줄여서 입는다지만, 짧은 건 늘일 수 없다.
허리를 줄여 입으라고?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다. 영 불편하다. 모양이 항아리가 되는 건 그렇다 쳐도 바지가 겉돈다.

기회

ARTICLE 2022-04-29

자연농법을 말하는 사람은 농작물에서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그냥 두라고 말한다. 흙에서 돌을 골라내면 땅 속의 습기를 만들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야 한다. 농작물의 잎이 누렇게 변하면 잎을 따서 다른 잎과 농작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결국 땅에서 미생물은 살아남지 못한다. 결과는 뻔하다. 땅이 죽는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비료를 섞어 미생물을 주입한다.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다. 자연스러운 순환은 자신이 떨굴 잎이 쌓여서 습기가 보존되고, 바람이 말리고, 비에 젖고 썩는 과정이 반복하길 기다린다. 그래서 땅이 살아 있다. 그 모든 순환의 고리를 인간이 끊고, 원하는 것만 취하면서 얻는 건 눈앞의 수확물이다.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두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소수의 인간과 소수의 집단이 그런 선택을 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참혹하다. 대량생산이 불가능해져서 배고픔을 견디는 것 보다는 나았을 상황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지금이야 풍성한 농작물과 그에 따른 가축의 살을 먹을 수 있으니 배부른 소리라는 의견 역시 일리가 있다. 하지만 21세기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와 식량난을 마주하고서는 생각이 달라질 수 밖에. 균형을 깨고, 적당함을 무시한 결과다. 충분함을 모르던 인간의 물욕과 얼켜버린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도 아직 그 과잉생산과 대륙간 비대칭소비에 대한 철저한 후회는 재화와 권력을 독점한 자본가와 그 주변에서 기생하는 자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과연 기회는 있을까?

Telegram

ARTICLE 2022-03-31

카카오톡이 보안에 취약 할 뿐더러, 검열가능하고 검사의 종이 한장이면 프라이버시를 탈탈 털어간다는 기사가 나오자 사람들은 우수수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때 내 텔레그램은 엄청 정신 없었다. 내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가입했다는 정보가 알려왔다. 피곤해서 알람을 해제해야 했다. 그러면 메시지가 텔레그램으로 왔는가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그냥 카카오톡이 싫다며 잠시 사용을 접어둔 것 같다. 두 세달 지나자 시들해진다. 그러다 한동안 뉴스에 도배되었던 박사방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해서 벌였던 참기힘들 정도의 범죄가 있었다. 그때 내 텔레그램은 또 난리였다. 알람을 없애야 했다. 이번에 텔레그램 탈퇴 메시지가 계속 떴다. 참 피곤했다. 사람들 왜 이러나 싶기도 했고.
VK(브콘닥테)는 러시아의 소셜미디어다. 2012년 VK는 러시아의 정보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자, 개발자(둘이 형제다)들은 텔레그램을 만들며 정보검열과 프라이버시 침해로 부터 프리할 것을 약속하며 새로 시작했다. 비영리로 운영되기에 창업자의 철학과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에서는 가장 믿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난 박사방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텔레그램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웃지못할 일이 생겼다.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는 그 단순한 원리 같은 걸 다시 느꼈다고나 할까.
2022년 우크라이나 국민은 텔레그램으로 소통하며 정보를 교류한다. 가장 안전하고 범용적이며 대중적으로도 사용가능한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팔랑귀 국민들이 텔레그램 욕하는 사이, 가장 안전한 의사소통을 기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테크는 진화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무엇을 응원하고, 어떤 의사소통을 희망하고 있는지 문득 의문이 들곤 한다.

핵발전소

ARTICLE 2022-03-14

퍼스널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크리넥스 티슈에 가까운 얇다란 팔랑귀인 탓에 건강상식은 끝없이 이리 저리 기울고, 몸 움직이는건 싫으니 영양제 몇 알 복용해서 건강해지겠다는 얄팍함을 잘 알고 있는지라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자율이 멈추는 자리에는 신뢰할 만한 타자의 강제가 간혹 필요하다. 그런데 트레이닝 센터를 찾는 사람 중 거의 절반은 체중감량을 목표로 삼는다. 트레이너와 대화하다보면 답이 분명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사례도 있고, 의지와 노력으로 감량에 성공한 사례도 있단다. 감량은 건강 때문일 때도 있지만 꽤 많은 사람은 원하는 몸의 모양새가 있다. 이런 대화속에 트레이너의 잊지 못할 한마디가 있었다. 감량을 말하는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면서 무엇을 안먹을까에 대한 생각보다,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꽉차있다는 것. 지금까지의 식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대부분은 과식/정크푸드/단순당섭취다. 더구나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 욕구를 잠재우는 것은 진짜 힘든 일이지만 감량을 위해서는 필수다. 감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즐겨먹는 음식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탄수화물과 단순당을 포함하는 각종 간식의 유혹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을 먹겠다는 의지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시작이 틀렸다는 트레이너의 지적은 매우 직설적이지만 옳은 말이다. 뭘 먹지라는 생각이 먼저가 아니다. 무엇을 포기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인가에 대표적인 사례가 체중조절(다이어트)에서 감량하는 방법이다.

언론사의 보도 건수도 별로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6공화국 문재인대통령 재임기간 탈원전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특히 핵물리학 또는 공학 관련 학계와 학생들은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이니 말할 것도 없다. 1970년대말에 핵발전소가 가동되었으니, 지금 이들은 원자력 일손으로는 2세대에 해당한다. 1세대가 기술력을 들여와 실험과 시행가능성을 보았다면 2세대는 생계와 직결되어 있다. 이 모든 주장에서 논쟁의 끝에는 "현재" 필요한 에너지 생산에서 "현재" 기후위기와 직결되지 않는 청정성은 핵이 가지고 있다는 것 두가지로 요약된다. 이것이 위기를 대하는 태도다. 위기는 생존문제다. 더구나 지금 세대가 아니라 다음세대의 생존문제를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현재 필요한 에너지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논쟁의 쟁점이 되지 않는다. 첫째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위기에 대한 댓가(cost)다. 무엇을 먹을것인가의 다이어트가 아니라 지금까지 무엇을 먹었지만 어떻게 안먹어야 하는지 생각해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로 다음세대에게 남겨주는 짐이 너무 큰 위험을 포함하고 있다. 즉, 안전문제다. 대한해협 건너 사는 이웃나라는 안전하다고 자신했다. 과연 우리는 그들만큼이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가. 최소한 나는 의심한다. 강남에 지은 백화점이 무너지고 대형선박은 수학여행가는 학생들과 함께 가라앉았다. 안전을 약속하며 공식 사용허가를 낸 가습기 살균제는 아기의 폐로 들어가 후천적 장애를 일으켰다. 무딘 안전의식을 가진 몇 명의 문제라고? 개인인 자본가의 욕심이 불러온 화였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이리(지금의 익산)역 폭발이며 성수대교는 어떻게 무너졌나. 한 세기에 한번씩 핵발전소의 핵폐기물을 교체관리해야 하고, 10만년간 위험이 잠재하는 위협적 쓰레기를 관리할 능력은 있는가. 지금 세대에서는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말하는 것이 백번 양보해서 옳은 이야기라 해도,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이 위협을 유산이랍시고 남겨주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

퀸즈갬빗

Buscant 2022-03-12

넷플릭스에서 2021년 본 시리즈 중에 가장 좋았다.
퀸즈갬빗은 체스 오프닝 중 하나라는데 체스를 잘 모르니 그저 여왕의 도전이나 도박 뭐 그 정도라도 생각했다.
이 시리즈는 체스가 스톨 전반에 가득하지만, 실제 스토리는 수양어머니와의 우정을 다루는 듯 하다.
이 영상은 퀸즈갬빗이 얼마나 이미지 연출에 신경을 쓰고 디자인 했는지 가볍게 자랑한다.
요샌 예술가의 장인 정신이나 영감보다 자본이 예술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고준위핵폐기물

ARTICLE 2022-03-11

원자력.더 정확하게는 핵인데 공포스러우니 원자력이란 말을 쓰는 듯 하다.
탈핵은 물건너가고 원전은 고치고 새로 지어 쓰게 되었다.
노심용융의 무서움을 우리는 수 많은 사고에서 경험했고, 지금도 후쿠시마의 방사능물질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고준위핵폐기물은 100,000년간 안전하게 가두어야한다.
그런데 안전하게 가두는 기술은 아직 인간에게 없다. 임시저장소는 100년정도 쓸 수 있다. 언제 인간이 핵연료를 가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쓰고 다음세대의 기술발전을 믿지고 하는거다.
진화의 관점으로도 우리는 핵발전소를 중단하는게 옳다.
번식(?)을 가로막는 중요한 위험요소이니 말이다.
후쿠시마의 핵 오염수는 일본 정부의 공식발표가 일일 1200톤으로 발표했다.
믿을 순 없지만 최소 오염수가 나오는 양.
아직도 무엇이 중요한가. 생존을 위협 받는 것 보다 더 위급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키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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