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여행방식에 대한 여러가지 분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누구와 함께 가는가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갑자기 훌쩍 떠나는 여행이 있는 반면 철저히 준비해서 가는 사람도 있다. 커뮤니티와 노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지난 여름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을 쓰려고 하는 의도다. 나의 여행스타일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다니는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지내는 여행”이다. 대체로 이곳 저곳을 구경하며 낯선 환경속에 나를 노출시키고는 무엇을 느끼는지 살피는 것이 다니는 여행이다. 비용을 생각하며 하나라도 더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기한 물건을 만져보는 것이 그렇다. 그런데 이런 여행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즉석요리를 먹고난 느낌 같다. 재료의 맛을 느끼기 어렵고 입으로는 잘 들어가지만 배가 부를 뿐 나에게 영양소를 제공해 줄 것 같은 느낌이 아닌 것 같달까. 그래서 난 대부분의 여행지에 도착하면 한 곳에 주로 머물며 매일 같은 거리를 걷는다거나 단골 식당을 만든다거나 하는 여행지의 일상적 경험에 주목한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머물면서 동네를 산책하고,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주일이 지나면서 묘하게 이곳의 문화적 특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공간에서 적응하느라 생긴 호기심이 사라질 무렵 놀라운 것이 보이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주말이 되면 개인의 차고를 이용한 장이 열린다. Garage sale또는 Yard sale이라고 말하는 중고시장은 집집마다 열리기도 하지만 마을에 조금 더 큰 규모로 열리기도 한다. 집에서 안쓰는 물건을 내놓고 파는 것이니 대단한 것은 아니겠으나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사소한 것이 거래된다. 차고에 쌓여 있던 1960년대 어느날의 신문 한부는 2불에 팔리고, 쓰다 남은 기저귀는 협상가능한 가격으로 팔린다. 오래된 가구는 상태에 따라 값이 매겨졌다.

도서관에서는 거의 매월 도서관 재단이 후원하는 행사가 있었다. 주로 헌책을 교환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토요일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 3시까지 열리는 이 헌책장터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오후 1시부터는 5불을 내고 자신이 가져온 가방에 갖고 싶은 책을 한 가득 가져갈 수 있다. ‘그럼 여행용 가방을 하나 가져와서 싹 쓸어가는 사람이 있을텐데...’라는 생각은 이곳의 문화적 태도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매 주말이 되면 도시마다 농산물 직거래 장 Famers market이 열린다. 도시라고 하기 보다는 작은 규모의 마을 장터의 느낌이다.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다운타운의 한 블럭을 이용하여 가까운 곳에 사는 농부들이 농산물을 직접 가져오와 팔거나 가공식품을 만들어 내놓는다. 보통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 3시정도에 장이 마감하니 이들이 이 시장에 나오는 것이 생계수단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유통시장은 따로 존재하지만 동네 장터에 나오는 것이 즐거워 보이는 이유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신선한 야채나 과일도 사고 공원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주말을 보낸다. 물론 장이 서는 곳에는 크지 않은 규모의 아티스트 무대가 열린다.

문화적인 모든 곳에는 왠지 모를 여유와 뭉클함 같은 것이 있었다. 한국에도 장터가 열리고, 무대가 있고, 공원도 있고, 축제도 있지 않은가. 단지 나는 외국여행 중이니 이런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여서 느끼는 것과는 달랐다. 이유를 알아냈다. 커뮤니티의 문화콘텐트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노인이다. 우리에게도 있는 장터는 동네에 있다기 보다 문화적인 거리에 자주 등장하고, 무대는 홍대나 대학로에 나가야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이 젊은이들의 문화다. 그 차이였다. 야드세일도, 장터도, 거리공연도, 도서관 재단의 행사도 대부분 노인들이 주도적으로 그 일을 해낸다. 심지어 20년이 넘게 진행된다는 마을축제도 진행자부터 스탭까지 대부분이 노인이다. 노인들이 주도하는 문화와 예술의 장에 세대차이를 느끼는 젊은이들은 외면하고 오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축제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20대/30대다.

축제에 모인 가족들 사이사이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있고,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축제를 즐긴다. 그냥 자연스러운 풍경속에 모든 세대가 공존한다. 이 모든 문화와 예술을 주도하는 노인들의 움직임으로 보면서 느꼈던 것이 뭉클함의 실체였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희망을 정의하는가.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를 준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희망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의 대안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의 미래에 희망을 선물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사기에 우리는 수 없이 속으면서 희망을 말하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번 캘리포니아 여행은 커뮤니티의 문화를 주도하는 노인과 지역사회를 만나게 된 것 같다. 문득 지금까지 함부로 사용하던 희망이란 단어를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은 윗세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살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노인이 행복한 모습이 지역사회에 노출되면 그 마을이 행복하다. 지금까지 마을의 행복은 어린이의 밝은 웃음속에 들어있다는 추상적인 상상만 하면서 살아왔던 내가 스스로 한심해 졌다. 복지제도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서비스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지역사회에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노인의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커뮤니티의 희망”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우리사회의 노인의 모습은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