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포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멤버가 "가서 발표하고 월세 벌어오라"고 해서 발표에 참여했다. 야마도를 만들면서 가졌던 생각을 짧게 정리한 글.


발표를 위한 자료를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치 않아 짧은 글을 씁니다. 발표내용과 무관하진 않지만 이 내용을 포럼에서 발표할 것은 아닙니다.

이웃 어린이의 예술교육

대림동에 2004년 이사왔으니 올해로 9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옆집엔 부부와 세자녀가 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밝은 성격에 얼굴에 웃는 주름이 크게 보일 만큼 멋진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낯을 조금 가리시고 쑥스러움이 많은 분이지만 막상 마주할 땐 늘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분이다. 아들 둘에 딸아이 한명이다. 이사왔을 당시 막내가 태어났다. 세째아이로 딸이었다. 태어난지 한달이 되었다고 했으니 아마 요맘때가 생일일게다. 그 아이는 지금 아홉살이 되었다. 이집에 살면서 가장 즐겁고 신나는 기억은 옆집 아이들이었다. 아침이면 세명이서 밝게 웃으며 복도(오래된 아파트의 전형인 복도식이다)를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 웃는 소리로 아침이 시작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어느날은 꼬마가 오빠들 학교가는데 따라나가며 데려가 달라고 우는 소리. 어느날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서 기승전결 없는 이상한 논리를 심각하게 펼치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꿉놀이를 하느라 돗자릴 펴고 누워있었다. 친구들과 누워 자는 시늉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마나 서로 깔깔대고 웃었는지 모른다. 길에서 마주칠때면 내가 바쁜 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가는 꽁무니에 자전거를 타고 따라와 인사를 했다. 동네 아이들이 "아는 아저씨야?"라고 하자 "아저씨 아냐. 오빠(?)야!"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뒤를 보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었다.

몇년 전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옆집에 피아노가 들어왔다. 큰 아이가 피아노레슨을 시작하고 도-미-솔을 벗어나지 않던 소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꽤 근사한 동요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엔 아이의 연주에 감동받으며 일어나기도 했다. 조금씩 악보를 보고 제대로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그 아침을 잊을 수 없다. 서서히 피아노 연주는 나아지고 있었다. 어느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 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이 들렸다. 현관 문을 열고 나서서 연주를 들었다. 다음날 큰 아이를 길에서 마주쳤다. “마이클 잭슨을 어떻게 알아? 피아노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곡이야?”라고 물었을 때 "아뇨...제가 좋아서 듣고 그냥 쳐본거에요"라고 큰 아이가 대답했다. 내가 집에 있는 인기척을 느끼고 들어간 그 아이는 그날 저녁에 들으라는 듯 Smooth Criminal을 연주했다. 옆집에서 은근히 들리는 아이의 연주를 보이스레코더에 담았다. 또 그 다음날은 엄마와 같이 문을 빼꼼 열고는 마이클 잭슨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아파트가 삭막하다고? 이런 이웃이 있으면 삭막할 틈이 없다.

막내인 여자아이는 14층에 사는 아이와 단짝이다.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계단에서 그 둘은 자주 앉아서 놀았다. 놀이의 도구는 참 간소했지만 늘 실속 있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제품화된 장난감이 아니었다. 나무젓가락, 휴지, 고무찰흙, 손전등을 자주 가지고 놀곤 했다. 참 다양한 놀이가 가능했다. 14층 꼬마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한 두살 정도 어린것 같았다. 어느날이었다. 계단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양이다.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불쑥 나가지 않고 주춤하고 섰다. 아마 14층 아이가 한글을 못 읽기 때문에 읽어주려는 시도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곰세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약속시간때문에 더 있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쪽으로 걸어나가자 반갑게 인사한다. 나도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 동화의 표지에 눈길이 갔다. 표지에 곰이 있었다. 아마 그림동화속의 주인공이 곰이었나보다. 동화책을 읽어준다면서 곰세마리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시작하는 이 명장면을 목격하다니 참 운도 좋다.

어느날 차곡 차곡 정리된 박스를 복도에 내다 놓았다. 일요일에 버리려고 정리하나 보다 싶었는데, 그 옆에 점점 쌓여갔다. 이상하다 싶어서 물었더니 이사가기로 했다고 전한다. 방은 두칸인데 아이들은 셋이고 이제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좁을만도 하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거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둘째 아이였다. 둘째는 잘 생긴데다가 쿨하다. 막내동생이 오빠오빠 부르면서 길에서도 꼭 손을 잡고 다니는데, 약간 어색해 하면서도 동생손은 놓지 않는다. 정작 옆집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이런 이웃과의 행복의 순간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조금씩 물건들이 버려지고, 다시 나왔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더니 어느날은 소파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둘째가 앉아 있다.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놓은 거실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책을 읽는다. 말을 걸었다. "여기에 의자가 있었으면 참 좋았었겠다. 완전 낭만 적인데"라고 말했다. 둘째의 대답은 "그렇죠 뭐"였다. 집에 들어가서 과자 한 봉지를 가져다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받더니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다. 정말 이 공간에 저런 푹신한 의자가 있었다면 꽤 재밌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겠다고 생각하며 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결국 아이들이 이사갔다. 막내 아이는 태어나 처음하는 이사를 맞이하게 될것이다. 집안에 신발신고 들어가고, 신문지 깔고 중국음식을 먹는 첫번째 경험 말이다. 둘째는 짐이 다 옮겨진 후에 새로 생긴 자기 방을 보면서 시크하게 쳐다 보고는 책본다고 의자에 앉아 있을테고, 큰 아이는 오늘 학원 안가도 된다는 말에 신나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거다. 아이들에게 삶의 환경이 바뀌는 이 경험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또 다른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만들어 주게 될것이 분명하다. 지나다니면서 이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계단에서 시멘트의 냉기가 느껴진다.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우선 이 아이들의 예술교육과 예술행위는 자연스럽고 적극적이다. 빛나는 성과를 만든 예술가에 의해 탄생했다기 보다 일상에 근거하고 있으며, 스스로 만들어낸 놀이다. 일상속의 예술활동이 준거집단을 중심으로 시작하고 매끄러운 크로스오버가 일어나는 비선형적인 또래의 놀이속에 담겨 있다. 이웃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뛰는 소리에 경고를 하고 싸움을 벌이는 현실은 물리적 공간의 한계가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문제다. 이런 자연스러운 일상속 예술행위의 현장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웃에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감각을 깨우는 것이 우선이다.

예술과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예술행위가 재미있다.

대림동(특히 대림2동)은 이주노동자 인구가 많다. 아침이면 직업소개소에 줄을 서있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고, 큰 규모의 소매점은 없으나 중국인을 위한 식료품점이나 음식점이 많다. 마치 상해의 뒷골목 같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시장을 지날 때면 우리말로 된 간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9년째 살면서 서서히 익숙해 질 법도 한데 여전히 신기한 것 투성이다. 거리가 변하는 것도 그렇고 새로 상점이 오픈하면 다들 몰려들어 구경하는 것도 즐겁다. 사진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간혹 사람들에게 동네를 찍자는 제안을 하곤 한다. 그때 내가 찍는 동네는 너무 낯선 풍경이 많아서 스스로 놀라곤 했다. 심지어 중국인민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길에서 걸어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런 특별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예술적으로 보이진 않는 동네다. 시쳇말로 좀 없어보이거나 딱히 뭐가 없어 보였다. 지식인들이 모여서 문화적인척 하며 모여든 마을같지도 않고, 최신의 것이 소비되는 곳도 아니다. 흔한 별다방 콩다방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저 그런 일상이 있겠거니 하고 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동네의 모습이 하나 둘 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고급스런 다방이 있다. 고풍스런 의자에 장인이 만들었을 법한 고급 커피잔에 에스프레소를 파는 곳이었다. 장사가 잘되고 안되고를 떠나 그 다방의 존재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곳에 근사한 커피숍이었다. 또한 극단의 연습실이 보였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아직 간판은 그대로 있다. 아마 이곳을 연습실 삼아 공연을 연습했을 곳이었다. 주택가 골목 안쪽 다세대주택의 지하공간이었다. 역시 그 간판의 존재만으로도 기분이 새로와졌다.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삼청동에나 있을 흑백사진을 취급하고 있는 사진관, 명동이나 가로수길에 있을 법한 최고급 앰프와 오디오를 취급하는 가게, 홍대에서나 볼 수 있는 DIY 가구를 제작 공방, 이대앞에서나 만날 수 있는 수선집이나 맞춤 정장을 파는 곳도 있다. 수시로 생겼다 사라지는 각종 아틀리에들도 많았고, 관악기를 배울 수 있는 밴드연습실도 있었다. 대림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동네가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정하고 만들어진 인위적 커뮤니티인 아파트숲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이 지역사회고 그것이 동네다.

역시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참 많이들 지도를 그린다. 문화지도를 그린걸 참 많이 봤다. 그 지도는 특정 시간에 특정 인물들과 특정 콘텐트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이다. 그 지도는 얼마나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정보는 업데이트 되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 담긴 지도는 정주성을 가진 지역민에 의해 구전되며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얼마나 있는가 말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런 지도는 의미없는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대림동에서 이런 문화적/예술적 생태를 감지하면서 동네친구들과 예술적으로(?) 작정하고 놀기 시작했다. 중국인 상점에 구경가고, 밤마실 나와 수다떨고, 새로 음식점이 오픈하면 동네사람의 의무감으로 팔아주러 가기도 했다. 도반생활을 하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사에 근거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일상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예술행위는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거의 모두 매일 그림을 그리고, 향이 좋은 차를 나눠 마시며, 거의 매일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했다. 사진을 찍고 함께 보며 하우스 콘서트를 열고, 사소한일을 거창하게 만들어 낄낄대며 문화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충분한 콘텐트가 만들어지자 담을 그릇이 필요해졌다. 그 그릇의 이름이 “야마도”다. 워낙 즉흥적으로 함부로 지은 이름이어서 의미따윈 없다. 대신 대림동을 서식지로 문화와 예술을 나누는 부족이 생겼는데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공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 넘나들기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먼저일리가 없다. 그 필요를 절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능한 것이 공간이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에 문화예술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아하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돌파구를 스스로 찾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발표에서는 이 과정에 무엇이 개입했는지를 말로 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