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일이다. 예상컨데 지금 문화예술강사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기획하라면 또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심이 사라져서 잘 모르긴 하지만, 훨씬 더 경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지만 2014년에 이런 레터를 보낼 수 있었던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술강사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어느 순간 예술강사는 예술교육을 소비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요를 채워주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몸, 붓, 렌즈, 악기, 무대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예술세계를 혼자만의 것으로 가둬두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술가가 예술을 가르치는 행위는 당연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지쳐버린 예술강사를 만나게 된겁니다. 강사연수를 통해서 예술강사를 만나면 ‘저 어쩔 수 없이 여기 앉아 있거든요’라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경로를 설명할 수 없지만 다양한 회의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행복은 커녕 불안과 분노가 더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술강사활동을 하는 개인을 보면 개성 넘치고, 열정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열정과 행복이 넘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예술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문화부와 문화예술교육 진흥원과 강사들이 맺고 있는 행정과 평가를 비롯한 이해관계의 불편함이 있습니다. 더구나 수천명의 강사는 집단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집단은 한 개인과 다른 캐릭터를 갖게 됩니다. 문화예술강사 집단의 캐릭터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행정적 구조안에 들어 있습니다. 몸의 언어를 문서로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미지의 언어를 커리큘럼으로 만들라는 요구는 있었지만, 무엇이 적합한 단어인지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더구나 매 수업은 일지를 요구했고 동어반복이 지루하고 힘들어질 때면 평가기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했는지 어떤 대화가 학생들과 오고갔는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문서 작성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겁니다. 그렇게 점수로 환산되어 원하는 지역의 원하는 학교에 원하는 수업시수를 가지게 되는 구조 안에 스스로 편입된 것입니다. 지식을 공유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른 강사보다 평가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면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양질의 교육과정과 방법론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없었을 겁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평가 점수를 받은 예술강사의 범례가 공개되거나, 강좌를 개설해서 지불이 완료된 가공된 정보였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가 그렇지 않았겠으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는 둘째 치더라도 최소한 학교에 온 예술가로도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예술강사가 수업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학교는 소수였고, 수업에서 사용해야 하는 장비나 재료조차 관리되지 않는 현실이 무겁게 느껴진겁니다. 어느 순간 평가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리는 자기 모습에 환멸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열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발견했지만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모르게 된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최소한 7년이상 방치해둔 것입니다. 이 컨퍼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방법론은 강사연수나 개설되는 다양한 강의에서 다룹니다. 강사들의 처우나 행정적 지원 문제는 공청회나 간담회, 설명회등을 통해서 다뤄야 합니다. 그 몫이 있습니다. 컨퍼런스에서는 “예술가로 살아온 강사 당신은 누구세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학교나 사회복지시설과 단체등에서 직접 피교육자를 만나는 문화예술교육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높은 평가점수를 득한 커리큘럼을 가지거나, 검증된 방법론으로 교실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커리큘럼과 방법론이 그 교사가 이해한 것이고 체화된 것이어야 합니다. 교육의 질의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더구나 행복한 예술가가 강의할 때 교실과 학생이 행복해지는 명료한 관계를 잊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교육방법론과 예술강사사업에 대한 각종 행정적 불만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 이유는 “예술가인 당신을 들려주세요. 우리는 당신이 어떻게 현재를 사는지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이 현재를 사는 이야기는 귀납적으로 현재의 한국사회 예술강사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식공유 발표를 하는 예술강사가 공통적으로 기획자인 저에게 했던 질문은 “정말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요?”였습니다. 교육과정 개발도 아니고, 새로 만든 방법론도 아니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어도 말해도 되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문제를 개발(!)해서는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믿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과가 물리적으로 쥐어지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 힘든 것이 예술가와 예술강사의 삶입니다. 하지만 예술가와 예술강사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 예술교육의 장에서 만나게 될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이 접하는 예술에 대한 태도에 가장 근접한 것입니다. 예술의 시작에서 느낀 초보의 설렘과 호기심이 살아있게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술강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