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는 윗세대에게 낭만을 비판받았다. 몸을 부비며 강렬하게 싸우던 젊은이는 사라졌고, 꽃을 들고 낙원으로 도피하려는 모습이 곱게 읽혔을리 없었다. 안일한 히피들의 무절제만 눈에 보였을 것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알겠냐며 코웃음을 쳤다. 베트남전이 발발하고 원치 않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와 가족의 시신이 도착했을 때도, 기성세대는 평화를 말하기 보다 승리로 애국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혼란의 시기에 일어난 아름다운 저항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1969년 8월 15일 우드스탁 페스티벌. 먼나라 미국의 이야기다.
우드스탁의 2박 3일은 평화를 말하는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사상과 이념을 말하기 보다, 무엇하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 옹졸한 사회안에서 만든 거대한 일탈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Joe Coker가 1969년 우드스탁에서 With A Little Help Of My Friends를 부르는 영상을 보곤한다. 몇 년 전 그의 명이 다하기 직전인 나이 일흔에도 공연에서 이 노랠 불렀다. 무대에선 백발의 노인이 서있었지만 난 언제나 우드스탁의 공연장이미지가 오버랩되곤했다. 그리고 평생 뮤지션으로 사는 동력이 우드스탁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긴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초월적 순간이나 상황에는 농도짙은 감동과 뭉클함이 있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 주는 특별함이나 어린시절에 경험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 그건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두고 두고 자양분이 되는 것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