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數學)

JOB SOUND 2021-04-21
  1. 공식이란 걸 외우라고 강요하던 문제풀이 시간이 싫었다.
    외우면 답을 맞출 수 있는데, 왜 외우지 않느냐고 반문하던 교사에게 잘못이 있었을까?
    무조건 미래를 보장한다는 위선 가득한 과장법은, 도박에 가까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던 그들의 직업정신이라고 해야 맞는 말인가?
    아무튼 나에게 수학은 참 힘든 과목이었다.
    중학교 때였나...?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을 모아놓고 1:1로 매칭해서 방과후에 교실이 열렸다.
    한 반이 70명이 되던 때라 1등에서 10등 열명, 61등에서 70등 열명이 수업 끝나고 한시간씩 남았다.
    그때만 해도 난 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했던 시절이었다.
    그냥 외우라고 하면 외워서 시키는 대로 답을 쓰면 시험에서 틀릴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 훨씬 어려운 점수 따기라는 걸 몇 년전 수능문제를 풀면서 멘붕이란 걸 경험했;;)
    나에게 매칭된 친구는 참 조용한 성격이었다.
    수학을(무려 나에게 수학을....???)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왜?라고 묻는 대부분에 그냥 그런거야. 원래 그래....를 연발했다.
    그 과외가 있던 2-3주동안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수학에 관심이 사라졌다.
    좀 충격이 컸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문제를 풀고 있더라. 이런게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인데, 설명하지 못하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2. 감각할 수 있는 자연계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들과 달리 수학은 추상적인 언어다.
    미/적분이 체계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 살고 있는 현대식 건축물이 세워질 수 없을테고, 네비게이션이란건 불가능했을게다.
    피타고라스는 파동수로 음계를 만들고, 피보나치수열은 피아노 건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걸 찾아내고 계산하기 위해 언어로 만들었다는 건 여전히 놀랍다.

바보상자의 귀환?

ARTICLE 2021-04-17

어떤 토론회에 갔는데 깊이 없이 함부로 떠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예술교육 워크숍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이건 매체 같은걸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이라는 말을 했다. 대체 그는 매체를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말을 할까 싶었다. 미디어교육의 현장은 테크놀로지와 문화현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미디어교육이 새로운 매체를 소개한다는 뜻이 아니라 의사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인간의 태도가 교육과정안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play/놀이로 매체를 받아들인다. 반면 미디어교육자는 학습과제로 배우고 익혀 사용한다. 수용자의 개별 사용성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모든 매체가 보편성(universality)을 필수요건으로 적용하고 있지 못하는데 있다. 현재를 사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체는 복합적이다. 신문은 옮겨서 편집할 수 있고 텍스트와 영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매체다. 영상텍스트는 영화관과 TV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곳으로 이동하며 유통된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디바이스의 출현은 수 백가지의 조합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미디어를 생산, 유통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단지 어린이와 청소년만의 문화는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장치로써 하나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지만, 미디어 소비의 측면에서는 개별 미디어로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은 무한한 복제와 재구조화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단일양식의 생산과 소비로 설명할 수 없다. 이미 다매체 복합양식은 보편적이다. 예를들어 내가 만든 단편영화가 테스크탑에서 보여지게 할 것인가 휴대가능한 디바이스에서 보여지게 할것인가에 따라 화질, 자막, 앵글에 대한 설정을 다르게 만들게 된다.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에서 비평과 분석을 넘어서 문화적 텍스트의 건강한 소비와 유통을 동시에 교육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선지 오래다.
청소년은 미디어의 적극적인 소비자인가-미디어생산자라는 측면은 고려해 볼 수도 없을 만큼 빈도수가 줄어들었다-를 생각해 보면 긍정하긴 힘들다. 그저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보인다. 아무리 기준을 낮게 잡으려고 해도 그렇다. 능동적인 소비자는 권리의식과 미디어의 생산방식이나 사회적 기준에 대한 기본인식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청소년에게는 그 기준으로 볼 때 수동적인 소비자에 그친다. 그 이유가 청소년에게 있지 않고, 청소년이 처해있는 한국사회의 미디어문화 환경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안타깝다. 아쉽게도 이미 창작보다는 소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비를 부추긴 것은 분명 소셜미디어다. 원치 않아도 노출되는 광고와 7-8초 내로 소비를 결정하게 만드는 자극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모든 재료는 본인이 제공하는 정보로 부터 나온다. 실로 무섭다. 습관을 누군가에게 통제당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면 난 아니라고들 답하며 항변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지금 나의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이 맞는지 말이다.

생존을 위한 도구 딱 하나.

JOB SOUND 2021-04-17

오늘 워크숍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 한가지를 고른다면? 이런 질문을 받고 도구 상가로 갔다.
용산에서 워크숍을 하니 아이들이랑 걸어서 다녀오는 게 참 좋더군.
뭔가 다 있음. ㅋ
식-의-주 순서로 우선 순위를 고르더라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불이었다.
그런데 토치를 고르는 건 너무 약한 모습이라 싫었고,
돋보기를 찾아 다녔다.
광학의 기본은 결국 모래를 녹일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도 했고,
얼어죽지 않기 위한 방법은 결국 불.
물은 나무 수액과 이슬을 모으고 증류해서 어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상상...

아....재밌는 하루였어 ㅋㅋㅋ

지하철광고

JOB SOUND 2021-04-13

오랜만에 2호선.
광고가 한 객실 전체에 하나의 회사다.
부동산투자는 디스코.
앱광고임.
메인 카피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다.
뭔가 슬프다.
노동이 이렇게 춰급받는 사회가 되었구나...

프라이버시

ARTICLE 2021-04-08

https://www.apple.com/kr/privacy/docs/ADayintheLifeofYour_Data.pdf

이 링크는 애플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스토리로 만든 문서다.
한마디로 "멋지다"
작년부터 모든 소셜미디어계정에서 탈퇴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내가 앱을 사용하는 동안 추적되고 있었다.
그 정보는 내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기업에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광고와 최신정보로 돌아왔다.

내가 소셜미디어 계정을 날려버렸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말했다. 이미 늦었다. 우리의 정보는 이미 공공재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최근 트래킹당하지 않고 살게 되니, 쓸데없는 정보가 훨씬 적게 들어온다.
정보가 생기면, 연관 정보에 시간을 또 들이게 되는 헛수고가 줄어준다.
한마디로 그들에게 놀아나지 않게 되는걸 체감한다.
소셜미디어만 삭제해도 이 정도 효과다.
하지만 여전히 신용카드를 쓰고, 특정 장소에서 걸핏하면 각종 앱을 열어 정보를 얻는다.
애플에서 이제 최대한 프라이버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거다.

며칠전 휴대폰 대리점을 하는 친구가 전화해서 아이폰에 대해 물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잃어버린 손님이 새 전화기를 구매하면서 사진과 연락처를 옮겨달라고 했단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찾아서 로긴하라고 했더니...아이폰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럼 안드로이드에서는 된다고?????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그런게 가능했나보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이폰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다.
내심 '아이폰 쓰길 잘했다...휴우'를 반복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정보가 포함된 다른 사람의 정보가 아무 전화기로나 전송할 수 있다니...

아무튼 이번 업데이트 반갑다.
ios14.5를 기다리게 하는 구만.

재보궐선거

JOB SOUND 2021-04-08

재보궐선거가 끝났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9시에 잠들었는데, 아침에 뉴스를 보니 국민의 힘이 압승.
서울시의 경우 단 하나의 구에서도 민주당이 앞선 곳이 없다.
누가해도 반칙과 비리가 넘쳐서 그런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피로감인가?
아무튼, 독식하던 그룹은 해체되고 또 다른 독식을 기다리는 그룹이 밥상 차려지면 냅킨을 목에 두르고 등장하시겠군.

페이크 뉴스

JOB SOUND 2021-04-06

페이크뉴스, 가짜뉴스를 조심하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수업에서는 가짜뉴스 판별법을 가르치기도 하더라.
언론은 이미 수 많은 품질미달/검증없는 정보가공/왜곡기사를 남발해 왔다.
정부가 바뀔 때 마다 편향적 기사와 뉴스를 쏟아냈다.
그런데 뭐가 진짜 뉴스란 말일까.
그 판단을 믿을 수 있는???? 언론사에 기준을 둘 수 있다고?????
수준 낮은 욕설과 비방을 쏟아내는 대안언론을 기준으로?????

얼마전 기자들을 잔뜩 보게 되었는데, 그들이 쓴 기사는 진심 쓸모없는 자원과 시간낭비였다.
그러니 뉴스는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맥락을 이해 못하는 기자들이 쓰는 것 보다 훨씬 효울적인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기자가 기사를 쓰니 가짜뉴스에 가장 근접하다니!

다시 미디어리터러시교육과 캠페인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일단, 사람들을 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3차산업혁명

ARTICLE 2021-04-05

2019년 언젠가 썼던 글. 기고글이었는데, 다른 주제를 먼저 써달라고 해서 그냥 묵혀 두었던 드래프트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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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단숨에 권력, 제도, 경제등 근복적인 것을 바꾸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60년대의 끝자락에 태어난 나는 혁명이란 말은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금기/taboo에 가까운 단어였다. 흔하면 내성이 생긴다고나 할까. 어원과 뜻이 무엇인지 보다 유머코드가 적용되면 입에 담기 힘들었던 단어와 문장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곤 한다. 한 예로 "엽기"가 그렇다. 엽기란 괴이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이나 환경등을 따라다니는 행동을 말한다. 그래서 공포스런 뉘앙스다. 허나 1990년대 인터넷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 엽기적이라는 과장은 유머로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흔치 않은 복식이나 기이한 행동과 범죄에 따라 붙은 수식어인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서서히 엽기의 강도가 낮아지고 무감각해진다. 엽기토끼나 엽기떡볶이가 생겨나고, 반어적 표현으로 쓰이거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면 엽기(적)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진짜 엽기적 행각에는 엽기라는 말을 쓰기 어려워졌다. 본래 그 어휘의 뜻이 표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혁명이 그렇다. 금기시 되던 이유는 이데올로기와 관련 있었다지만, 혁명은 본래 근본이 뒤 흔들려 전환될 때를 지칭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시로 혁명이고 혁신이다. 쉽게 무너진다면 이미 근본적인 것일리 없다. 지금은 혁명이나 혁신은 아무데나 가져다 붙여 놓아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의 입맛에 단순당인 설탕을 쏟아부어서 인기를 끄는 장사꾼이 등장하자 요식업계는 "혁명(?)이 일어나고, 혁신(?)적인 사업가의 모델이 된다"고 써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산업혁명. 이건 산업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도구나 장치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엄청난 생산량의 증가를 불러왔다. 쉴새없이 노동해도 최대생산량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가 근본적인 변화를 주도한 대량생산이 가능케 한 혁명. 그게 산업혁명이다. 구조와 환경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말장난에 가까운 유행이 지나가곤 있지만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무려 4차다. 하지만 참 근본없이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스피치에 섞어 뱉은 말이다. 생각을 다시 해보자. 단숨에 근본적인 것을 어떻게 바꾸게 되었는가. 미국의 제러미 러프킨은 2011년 3차산업혁명이란 책을 썼다. 디지털혁명에 대한 언급이 주로 이루고 있으며, 4차산업혁명이 지칭하는 거의 대부분이 겹친다. 갑분싸라고 하나? 느닷없다고 해야 하나. 클라우스 슈밥이 4차산업혁명이란 말을 꺼낸게 2016년이다. 어떤 의도가 감지되지 않는가. 이에 대해 제러미 러프킨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은 잘못됐다는 내용으로 긴 글을 쓰기도 했다. 최근 3차 산업혁명이 폭발적인 속도로 진행된 건 맞지만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이 단어를 처음 소개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마케팅 목적에서 이런 단어를 썼고, 우리 모두를 혼란스럽게 했다. 한국 정부나 기업에 어떤 표현을 쓰라고 강제할 순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3차산업혁명에 대한 포럼과 강연을 연다. 혁명을 마구 들먹이며 사용하면서 규제를 풀어달라고 주장하고, 이슈몰이와 더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들의 유명세가 자본을 긁어 모으는 사이 혁명은 무감각해진다. 5년사이 혁명이 한 시대(era)를 건너뛰어도, 유행으로 재화를 얻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저 누군가 이용가치가 남아 있는 어휘와 문장이 있다면 얼마든 복붙(copy&paste)하겠다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수작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본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의도된 사건이다.

제러미 러프킨의 [3차산업혁명]은 동의할 수 있는 언어로 채워진 저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수평적 분산자본의 시작, 재편된 노동과 시장의 가능성, 화석연료의 종말로 시작하는 새로운 에너지 등등. 여전히 그 역시 혁명일까를 의심과 검증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급하게 등장한 4차산업혁명이라니. 여전히 걸핏하면 써먹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거야 말로 혁명이다. 근본을 뒤집어 놓았으니 말이다.

예술교육에 몇 년전부터 4차산업혁명의 망령이 돌아다니다 최근에는 좀비가 되었다. 령은 손에 잡히지 않아서 무시할 수 있었지만, 좀비는 위해를 가한다. 융합교육이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한다고 떠들어대거나, 뉴미디어로 예술행위를 하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패러다임이라고 말한다. 아동과 청소년에게 기술과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세계에 신앙심을 갖고 따르면 미래를 대비하는 것 처럼 떠드는 것 처럼 영혼없고 근본없는 표현이 또 있을까. 장르간 컨버전스가 굳이 요구되지 않는 순수예술이 있지만, 이미 융합없는 예술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매체의 속성을 종단(전수되는)하고 테크놀로지의 범용적 가능성을 횡단(수평성)한다. 한마디로 종횡무진이 딱 맞는 말이다. 누가? 아티스트가 그렇다. 단지 새로운 공산품을 조립하면서 뉴미디어 아트라 우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에서도 이미 수 많은 아티스트는 테크놀로지와 지식과 정보를 순환시켜가며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크로스오버를 실행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회로도 읽고, 코딩하고, 센서와 와이어리스 컨트롤러를 보면 "앗!@@ 4차산업혁명 시대의 융합교육이다"라고 외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 신상품을 좋아하고, 낯선 단어를 말하면 섹시하다고 착각하고, 인싸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자. 근본없는 어휘를 주워들고 힙스터가 되었다는 착각은 버릴 때가 이미 지났다.

성덕

JOB SOUND 2021-04-03

난 성취욕이나 인정욕구가 분포곡선에서 거의 왼쪽 끝에 위치한다.
한마디로 '나는 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상담수퍼바이저가 설명해 준 기억이 난다.
맞다. 그래서 내 배짱대로 산다.
그런데...그런데...아이돌이 인정해주는 몇 마디를 들었다.
한마디로 성덕이다.
희박한 인정욕에 에너지가 채워지니 진정한 정화를 느낀다. ㅋㅋㅋㅋ
충성을 맹세해야겠다.

이념

JOB SOUND 2021-04-03

이념. 독일어로 이데올로기.
21세기가 되어서도 이념을 앞세워 선동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니.

변환의 시대를 살고 있는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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