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메모(순환/탄력/기반)

JOB SOUND 2021-03-17
  • 생태나 환경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이미지 속에 너무 한정적인 편견이 작동하는 듯. 생태, 에콜로지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상태를 뜻하고.
    환경은 자연환경을 지칭하고 되니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모든 조건을 말함.
    원래의 뜻은 그러한데, 교육사업으로 풀면 반복하여 생태/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게 되는 듯 하다.
  • 사업은 그래서 생태적이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대량생산과 소비구조이니 생태나 환경문제에 인간이 나설 수 있는 것은 금지시키는 정부의 정책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이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으나, 이미 구조화한 산업구조에 (임금노동자의)생존이 달려있어서 딱 두가지. 아주 강력한 금지조치이거나 타노스적 발상이 남은 듯하다.
  • 즉,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담아 캠페인과 운동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임에도 생태환경을 말하면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고 작은 실천 따위를 거론 하면서 죄의식을 심어주는 방식은 옳지 않은 태도다. 비닐소비를 줄이세요. 일회용을 쓰지 맙시다. 포장재를 최소화합시다. 등등이다. 비닐은 생산량 자체를 줄이고 비용을 지불하도록 제도화하지 않는한 줄어들지 않고, 일회용기나 포장등은 제품의 유통과 연관되어 있다 그 역시 제도우선이다. 개인이 쓰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생산 자체가 줄지 않는 이유다. 공포를 심어준다해도 소용없다는건 이미 검증된것 아닐까.
  • 대안을 제안하고 정책과 제도에 개입해야 한다는 실천을 한 파타고니아 같은 기업의 사례로 알 수 있다.
  • 삼겹살은 싸서 먹었던 일종의 쓰레기(?)고기인데, 많은 사람이 찾으니 고급음식으로 둔갑하고 비싸진다. (갑자기 연관성 없는 것 같은데...이런 현상의 반복은 생태환경운동과 거의 유사하다)
  • 이런 이유로 생태/환경이라는 표제를 달고 교육사업을 운영했을 때 구체적인 실천을 권하게 되니 반생태/비환경적인 프로그램이 계속 생산되는 듯 하다. 생태와 환경은 이미 그 자체로 독립적인 어휘로 사용해야 한다.
  • 순환/써클/탄력/리질리언스/바탕/그라운드...이런 개념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문화기반시설연구

ARTICLE 2021-03-17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책기반 사업운영을 위한 기반시설 연구를 본격적으로 했다. 문화기반시설 연구에 쓴 원고의 일부. 최종 원고에는 정치적(?)으로 약간 수정되었지만, 이 내용이 드래프트였다.


2장 3절 / 문화예술교육 정책 추진을 위한 핵심주체로서 문화기반시설의 방향과 역할

문화기반시설의 방향과 역할은 각 시설의 설립취지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사업수행의 원칙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며, 존립근거가 된다. 문화기반시설의 이미지는 문화와 예술이 핵심어가 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반시설에 대한 평가와 논의 구조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수행거점이 확보되었다고 보는 것은 많은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짙다. 도서관은 고유의 역할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는 것이 필요하고, 문화의집은 설립초기부터 교육기능이기보다는 이용시설에 가깝다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그 시설을 위탁운영하고 경우와 설치 및 관리되고 있는가에 따라 기능적 평준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즉, 문화기반시설은 하나의 독립적 성격을 띠고 있는 개별역량을 중심으로 분류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1)인구의 수, 2) 지역 문화자원이나 인프라, 3) 수혜대상자의 물리적/심리적 접근성, 4) 네트워크 구조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5)자원활용능력, 6)시설운영주체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도서관, 문화원, 문화의집등이 동일한 이름이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능과 사업수행에 있어서 위의 1)-6)에 따라 내용적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화기반시설이 이미 확보되어 있는 가운데 문화예술교육의 내용적 터미널이 되는 것은 당연히 문화기반시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문화예술교육을 브랜드로 상정하고 통일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은 섣부르다. 문화기반시설이 자기역량강화를 위한 노력을 못하거나 안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지금 현재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유효할 것이다.

4장 1절 / 사회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문화기반시설의 조건

문화적 결핍과 소외가 인간의 삶의 질과 무관하지 않다는 발상이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에 그칠 때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내용적 결함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문화기반시설의 이용자가 문화적 소외를 대도시를 기준으로 비교한다거나, 지역사회의 이해정도와 해석을 위한 노력을 시설운영주체가 자발적으로 하고 있지 않을 경우 문화결핍과 소외의 문제를 희석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기반시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실행하고 검증받는 것이 중심이 아닐 것이다. 시설은 일종의 지역 내 문화환경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문화기반시설로 존재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시설이라고 생각하는 운영자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설립취지나 운영하고 있는 사업의 최종 목적은 프로그램보급이 아니라 문화환경을 구성하는 더 큰 목적을 수행하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사업내용이 설립취지와 사업목적과는 이질적으로 프로그램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한계가 생긴다. 사회문화예술교육이 실행되기 위한 문화적 태도가 필요하다. 사례연구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주 대상자가 사회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문화결핍과 소외의 대상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인, 장애인, 문화적 접근성이 어려운 농산어촌의 아동 청소년 등이 그 대상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 문화기반시설에서는 소외계층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확신은 가지고 있지만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가장 수고를 덜 들이고 모집할 수 있는 대상을 확보하거나, 시설이용자들의 중복 수강 등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요 이용시간대가 농산어촌의 경우 노동시간에 해당되는 경우에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전업주부와 방과 후의 아동에 국한된다. 마치 문화기반시설이 아동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전문기관처럼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사회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대상자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역에서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할 때 사람이 모집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이는 그 대상자들이 문화소외의 상황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만약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홍보했을 때 대도시처럼 사람들이 모여든다면 이미 소외계층이나 소외지역의 대상자가 아닐 것이다. (물론 대도시의 경우라고 해도 소외계층의 대상인구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많은 대상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시도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수행하는데 있어 훨씬 수월한 모집 및 모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대도시의 사례를 빌어 프로그램을 세팅하고 운영하거나, 대상인원의 적정수가 너무 많아서 스스로 실망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지역 문화기반시설에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설자체를 문화환경으로 만드는 노력이 동시에 시도되어야 한다.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대상은 문화적 욕구 또는 지적 호기심이 있다고 전제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대상자군은 문화적 욕구를 발견해 내기에는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거나 물리적 접근성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개인의 힘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다다르기 힘들다는 것을 염두하고, 문화환경으로써 시설의 모습을 상정하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4장 2절 / 시설 유형별 활성화 모델 개발(문화원, 문화의집, 문예회관 등)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하는 중심이 되는 거점은 이용시설로의 편의성이 아니라 시설의 설립목적인 사회문화예술교육사업과 어울리는 것이 우선 검토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박물관 미술관이 사회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시설의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시도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없다. 오히려 문화원과 문화의집에서 기획한 내용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사업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시설의 독자적 성격이 분명하다면 사회문화예술교육 중심의 활동을 활성화하기에는 힘들다고 보인다. 시설을 분류할 때 문화예술교육의 전문성을 별개로 놓고서라도 교육프로그램의 코디네이션능력이나 교육기획력을 갖추고 있는 인적구성이 되어 있는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일단 현재 문화예술교육의 전문성으로 별개로 놓아야 하는 이유는, 각 시설이 문화예술교육수혜기관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문화원, 문화의집, 문예회관, 도서관등 문화기반시설은 각자의 사업영역에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라고 독자적으로 개발하거나 수행하려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문화적 서비스이거나 예술 또는 예술교육의 범용적 수혜, 시설이용자 수의 양적 확대등을 목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나의 사업으로 바라본다. 드러나고 있는 사업의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문화예술교육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 문화원 / 문화원은 지역문화 활성화방안에 대한 논의구조를 선행 검토하고 있으며, 시설이 확보되었을 때 최우선으로 결정하고 수행하는 사업내용은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원과 역사적 보존가치를 가지는 유, 무형의 문화자원에 대한 발굴 및 보급이 사업이 된다. 이런 사업은 교육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교육사업이 함께 구성된다. 내용적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원칙에서 그러하다.

  • 문화의집 / 이용시설로의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대다수의 문화의집은 지극히 한정적인 인적구성을 가지고 있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것 보다는 문화공간으로 지역사회에 문화적 자극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종사자의 수가 부족하다. 특히 군단위의 작은 규모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에 프로그램이 많아진다고 해서 발전하는 것은 없다. 문화의집을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개척하는 것이 우선과제다.

  • 도서관 / 중소도시를 포함해서 가장 접근성이 좋고 정체성이 분명하다. 더구나 책을 읽는다는 문화적 행위가 가지는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태도가 도서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기 보다는 특화된 독서문화와 정보습득이 가능한 공간이 된다. 사서의 기본업무가 도서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낡은 개념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며,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에 통로역할과 독서와 도서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문화기획이 업무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과 공간의 결합형태로 볼 수 있다.

  • 문예회관 /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 분명하지만 교육기획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화향수권리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자생적 기획을 하려는 의지를 발견하라는 권유는 시설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주된 관점은 문화향수권확대라기 보다는 관객개발에 가깝다. 물론 관객개발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하면서 문화향수권에 대한 가치를 발견해 냈다면 그건 부가이윤이 된 것이므로 막을 이유가 없고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을 중심사업의 하나로 보고 있지 않다.

  • 박물관, 미술관 / 국공립과 사립이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문화와 예술, 교육이 동시에 그 기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취약점이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도 박물관과 미술관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우선이지 지역민의 상황과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중심에 놓여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지역에서는 일정수준의 경계나 이질감이 있을 수 있다.

  • 평생학습관 /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문화예술교육적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공간이다. 평생학습 담론의 시작점이 문화예술교육보다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평생학습의 시각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이미 떼어놓고 바라보긴 어렵다. 그런 이유로 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은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은 적은 비용을 들여서 수혜받을 수 있고, 학습권에 대한 보장이 동시에 담론화되고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이 활성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 구민회관/여성회관/마을회관 / 이용시설로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자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시설의 낙후되거나 다른 이용시설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 보다는 보다 효율적 공간이용의 개념으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 기타 / 사회복지관과 청소년시설 / 사회복지나 청소년활동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시설이어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사회복지관의 이용자가 대부분 사회문화예술교육의 대상자라고 본다면 복지관과 연관된 사업내용과 보다 전략적 제휴방식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년시설은 청소년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활용하여 문화강좌들이 있지만 상업적 문화센터와 차별성을 갖는 것은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시설의 운영비마련을 위한 것에 가장 가깝다. 그래서 사회문화예술교육사업과 연계한다면 유효한 시설이 될 수 있다. 사회복지관과 청소년시설에는 대부분 전문성을 가진 교육기획자가 일하고 있다는 강점도 살릴 수 있다.

예술교육단체는 왜 사라졌을까

ARTICLE 2021-03-16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이 10년이 넘어간다.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소위 문화계와 예술계의 지형이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변화는 곧 전진하거나 발전한 것과 등치시켜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문화교육이나 예술교육은 어떤 교육 행위자를 양산하게 되었는가. 그 행위자는 누구인가가 궁금해진다. 우리사회에서 형식교육과는 어느 정도 무관하거나 대안적 성격을 가진 개인과 단체가 부각되었다. 예술과 놀이로부터 시작하여 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이 건강한 문화적 경험을 만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전국의 문화예술인이 매개가 되어 교육행위가 일어났다. 시키는 사람은 없었으나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기에 자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고, 세인의 관심이 폭발적일 순 없었다 해도 커뮤니티에서는 삶의 궤적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되는 행위자(또는 행위자군)가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진입했다. 진입경로야 모두 다르겠으나 이미 꾸준히 문화예술교육에 포커스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붐업이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고민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교육자의 절대수가 준비되지 않았고, 정책이나 사업은 공공의 장에서 펼쳐지게 되므로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거나 기준이 다른 평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교육자가 없는데 교육행위는 일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사실 아직도 해갈되진 않았다. 피교육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두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목격할 때 이런 생각을 지우기란 힘들다. 아동, 청소년, 장애인등으로 구분되는 대상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 피교육자인가에 따라 드러나는 삶의 모습을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문화예술교육은 기능교육이 아니라고 틈틈이 또는 전면에 내세워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지만 어디 그러한가. 여전히 피교육자에 대한 배려없는 집체교육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반문화적인 환경에서 비문화적인 교육자가 문화적인 예술교육을 행하고 있는 상황도 자주 드러나곤 한다. 교육자의 절대수가 부족할 만큼 정책과 사업은 양적으로 팽창했다. 때론 양적확산의 결과가 질적 성장을 불러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문화예술교육이라 불릴만한 단체들이 자기모습을 정돈하고, 기존의 사업이 두 세배로 늘어나면서 더욱 활동이 잦아지는 경우를 보게 된 것은 매우 흐뭇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문화예술교육행위자가 자기가 속한 지역사회이거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어도 되거나, 굳이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함정에 뛰어들게 된 모양새다. 문화예술교육자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거나, 전문성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예술을 기능으로 훈련시키는 훈련프로그래머는 최소한 아니다 라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거칠고 날것에 가까운 실체를 마주하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 행위자는 피교육자에 대한 폭 넓은 관심과 이해를 중심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도시거나 농산어촌이거나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과 조건, 생태, 문화로부터 자극받으며 그와 연관된 관계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생존을 위한 근거가 되기도 하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교육자는 피교육자 개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 개인이 놓은 환경의 보편과 특수를 동시에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행위가 일어나는 시점은 그 관심사(때로는 문제해결이기도 하다)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또한 교육전문성을 위한 노력이 수반된다. 문화예술교육이 강조될 때는 이미 교육자가 교육받은 내용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접근방법이 부정된 것에 가깝다. 교육자가 깨닫게 된 예술적 상상력이나 실천능력이 긴 시간의 노력으로 얻어졌다면, 보다 정리되고 간결한 교육과정을 생산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문화예술교육 전문성은 전문예술가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풍부한 삶의 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나 더 서술하자면,작업자군의 연대를 상상해야 한다. 개인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단기 아르바이트의 수준을 생각하고 있다면 위의 두 가지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긴 어렵다. 그런 이유로 교육자는 작게는 공동체나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려 노력해야하고 크게는 전국의 네트워크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해진다.

문화예술교육 단체가 늘지만 줄어들었다? 이런 모순을 말하게 되다니 한숨이 나온다. 각종 펀드와 지원이 생기면 그 자본의 흐름을 따라 비대해진 조직의 거품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된 결과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지만 단체가 아니라 개인강사가 양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기형적인 모습이다. 특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배정받은 지역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각종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어이없다고 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정책과 사업은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기뻐 날뛰기 위해 치러야하는 값이 있다. 환경과 대상에 대한 이해, 자발적인 전문성훈련, 교육자간의 연대를 지불해야 한다.

다수의 선택

JOB SOUND 2021-03-16

어느 정치학 교수 왈.
“다수가 손을 들어주어 대표를 선출한다는 건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최악을 선택한 꼴이 되었으니 잘잘못을 논할 사람 또한 줄어든 셈이다.
다수가 선택한 것이 다수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

기술과 예술 / 먼지와 공기청정기

JOB SOUND 2021-03-16
  1. 꽤 오래전 우연히 보게된 독립영화 속 한 장면이다.
    30대에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60세가 훌쩍 넘어 퇴직했다.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자네, 30년 넘게 자동차를 만들었군"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한다. "음. 30년 넘게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자동차를 만들 줄 몰라. 난 뭘하며 산거지?"
    무슨 영화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때 주인공 할아버지와 친구의 대화가 잊혀지질 않는다.

  2. 복잡하고, 세분화되고, 뭔가 끝없이 정의내리는 사회에 살 수록 우리는 원래 한몸이어야 하는 개념들을 나눠놓고 좋아한다.
    분해하고 나면 다시 조립할 수 없는 개념까지 찢어 놓곤 한다.
    기술과 예술이 그렇다.
    얼마전 예술가가 가진 기술로 예술행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한국의 행정용어로는 그 행위자체보다 결과에 치중한다.
    납품해야 하는 생산물로 취급하니 그 세계에선 예술이 사라져야 거래가 가능하다.

  3. 구글이 카드박스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가구나 가전제품도(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했던...?) 튼튼하게 만들고 오래 사용하는 걸 권장하지 않는다.
    하물며 IT기기(뭐 이런 용어로 그냥 퉁치지. 설명 복잡하니)는 어떻겠나.
    구글은 VR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골판지를 접어서 사람들에게 사용성을 테스트했다. 그 사이 글래스 따위를 계속 만들어냈지만,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증거가 속속 나왔고 구토와 충돌 사고 위험이 끝없이 따라다녔다.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상현실의 가능성을 못찾아냈다.
    심지어 몰입감 최상의 게임이나 포르노 시장에서도 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4. 며칠 째 미세먼지 경보가 울리고, 아이콘은 방독면을 쓰고 있다.
    마음껏 심호흡 할 수 있는 곳은 실내 밖엔 없다.
    참 웃기긴 한다.
    미세먼지가 문제가 되니 공기청정기를 판다.
    그 공기청정기를 만들어내느라 공장을 돌린다.
    더 더 더 더 더 공기가 더러워져야 누군가는 부자가 된다.
    미세먼지는 결국 나도 일으킨것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어진다.
    결론은...우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절반 훨씬 넘게 건너갔다.

교육자의 처세술 또는 권의지계(權宜之計)

ARTICLE 2021-03-13

처세는 타인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을 지칭하니 결론적으로는 관계방식에 대한 표현이다. 긍정적으로는 적응력이나 융통성이 발휘되는 것이지만, 얇은 귀 또는 철학의 부재와 임기응변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세+술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기 보다 사회관계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처세술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이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심지 없이 휘둘리고 사익만 취하는 방식을 지칭하니까 그렇다.

우리사회, 절대다수의 교육현장은 어떤가. 우리는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교육장면에서 교육자는 답을 잘 알려주는 사람이어야 생존하게 된다. 전인교육이고 나발이고 당장 교육자가 먹고 살기 위한 생존법 또는 처세술이 발동한다. 내용은 말뿐이고, 형식이 주도하면 우리는 어떤 해법에 다가가는 길을 잃는다. 다수의 문화가 내놓은 정답 강요. 이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면 교육자는 그저 피교육자와 그 이해당사자의 욕구에 순응하며 밥벌이를 하는 것 이외에 시도할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답을 요구하는 피교육자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난감할 필요가 직업적으로는 없어진다는 뜻이다. 일단, 가르치는 것은 전문성이 그리 많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의 역할인지가 끝나고 나면 바로 커리큘럼이 요구된다. 교육내용을 확정하고 성취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은 성취를 위한 학습계획에 따라 구조화되고, 학습성취가 부족할 경우 보충하며 최종 목표에 다다르는 것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예상하는 범위의 성취와는 차이가 있다. 그 예측이 때로는 부작용이 되기도 한다. 교사의 성취정도와 학생의 성취정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며, 개인의 능력과 교육장면의 환경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육 커리큘럼을 생산하는 교육자가 아무리 성찰적 개인이라도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피교육자를 "이윤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개인의 목표를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시스템안에서 무력하다.

관찰

ARTICLE 2021-03-13

많은 예술과 표현에서 관찰을 만나게 된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매일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려는 노력이 예술로 쌓이게 되는 결과다. 감동은 무엇에 의미부여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속성이 있기에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닿아있다. 즉 공감의 성취물이다. 관찰은 어떤 특정한 대상을 분석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곤 하지만, 예술행위 또는 예술교육에서 관찰은 분석 이전의 단계를 지칭하게 된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침잠으로 부터 시작되는 시간싸움이다. 관찰의 주요 대상은 일상이다. 일상을 관찰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단지 특정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감각을 열어두고 대상에 침잠하는 과정은 단지 대상의 외형적 변화를 감지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선, 시간에 대한 감성이 열린다. 우리가 무감각하게 누리는 광원은 태양으로 부터 온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밝기와 위치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바뀐 것을 보게되는 듯 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왜 모를까 싶지만 통합적 감각을 열어두려 노력하고 보면 시간의 흐름이 신기하거나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대상을 보는 것에서 지각된다. 그 지각에서 그치지 않고 대상체가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그늘이 눕거나 사라지는 경험이다. 여기서 "순간"이 무엇인가. 필연 속 우연의 연속이며/시기는 알 수 없으나 패턴으로 예상되며/수를 셀 수 없는 간섭의 조건을 포함한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이라 걸 감각으로 느끼면 그제서야 자신의 경험영역으로 수용한다.

관찰과 일상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의 관찰과 기록은 경험을 타자화 시킨다. 수 많은 예술이 아티스트의 자기표현에서 나왔다는 것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개인의 세계관이며 그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개인이 보고 듣고 만지는 감각과 대상체의 연결을 시도하면서 개인의 감각과 감정 또는 경험을 내면에서 외부세계로 내보내고 다시 받아들이는 순환을 반복하면서 타자화된 자기 경험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야 비로소 진짜 자기의 순수한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거나 보편성이라는 애매한 경계속에서 명제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단지 그것이 개인과 대상체와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참여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더 분명해 진다. 일상은 매일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반복은 같은 것이 되풀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의 같은 패턴화에 대한 인식이다.

“자신을 소재로 자기 표현이 이루어지고 나면 거기에서 ‘나’는 사라지고 타자화된다” -Nicolai Hartmann

“오브제는 세상을 사는 인간의 기호이다.”–Roland Barthe

데이빗 린치와 모비

Buscant 2021-03-13

데이빗 린치에 대해 말하자면 며칠 걸린다..라고 하고 싶지만 도저히 잘 말할 자신이 없는 감독이다.
모비는 일렉트로닉뮤직 하면 떠오르는 뮤지션이고,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 유명한 Extreme Ways를 만들었다.
이 둘은 이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모비의 곡에 데이빗 린치가 만든 비디오.
일단 무조건 좋다.

거짓말에 대한 단상

JOB SOUND 2021-03-13

거짓말 사실을 말하려면 시간을 들여야함.

거짓말은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돕기도한다.

은폐하는것도 거짓말일까? 딸에게 하는 질문에서 "남자친구 있나?"정도의 피상적인 질문 혹은 안부에 딸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공약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 거짓은 아니게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 같다.

가치를 지키겠다는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 그건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거나, 그(들)의 능력부족의 문제로 끝나곤 한다.

거짓말의 동기

  1. 처벌피하기
  2. 보상이 걸릴때
  3. 타인보호
  4. 자기보호
  5. 존경받으려
  6. 어색함 탈출
  7. 난처상황
  8. 비밀유지
  9. 정보통제로 힘을 행사

사치와 거짓말은 동격

기억은 조작의 산물이다.

중앙 측두엽에 머무른다.

특히 분류기능은.

컴퓨터 보다 더 기능이 좋다.

정답이냐 오답이냐. 지식에 대해.

무엇을 기억할 때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것을 기억하게 된다.

모든 기억은 사실상, 거짓이다. 기억은 유동적이다. 우리가 바꾼다

카피에 대한 여러 해석_워크숍 초대

ARTICLE 2021-03-13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정보를 접합니다. 흔히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정보의 양과 무관하게 정보의 질이 훨씬 중요합니다. 더구나 정보는 늘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건강한 정보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가 현재를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얼마전 어떤 선생님을 뵙게되었습니다. 그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되든 백신을 맞아야 할 때가 올텐데 접종시기를 어떻게 결정하겠냐는 것이었어요. 순간 멈칫하더라구요. 하지만 나름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과 같은 대답을 하는 정보와 지식이 필요해진 사회가 되었다는 겁니다. 백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임상실험이란 무엇인지. 조금 더 필요하다면 그 역학작용과 면역체계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살아남기"위해서라도 반드시 입력해 두어야 한다는 거죠. 정보와 지식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 알아내거나 발견한 정보와 지식이 있을 때 공유해야 하는 것은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자 윤리입니다.

"Copy & paste" 요즘 사용하는 줄임말인 "복붙"은 뭔가 도둑질 같기도 하고, 해선 안되는 것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전 정보를 복사하면서 배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농 섞인 표현이 있기도 하구요. 이번 시즌에서는 건강한 정보의 업데이트는 이전 정보를 정확히 알아야 가능하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이는 인간의 문명 대부분에 걸쳐있습니다. 예술은 어떨까요. 물감의 성질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 생기고, 저항과 반도체가 없었다면 우리는 생활에서 전기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정보와 지식은 결국 기반이 되는 무엇을 존중하고 잘 카피해냈을 때 새로운 창의적 발상으로 작업을 도와줍니다.

복사와 붙이기에서 원본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워크숍을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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