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특보

JOB SOUND 2021-07-15
  1. 기후위기 학습을 하다보니 올해 폭염은 공포스럽다.
    낮에 장시간 야외활동은 피하라는 뉴스특보.
    땅이 좁아지니 높은 지형으로 대피하라.
    재활용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중독된 소비.
    지구를 살리겠다는 오만불손한 태도. 지구를 살리는게 아니라 인류의 생존일 뿐.

  2. 옆집이 공사중이다. 이사 전 리모델링.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쓸 수 있는 걸 거침없이 버리고,
    뭔지 모르지만 해로와 보이는 물질을 도포하고 밤새 서큘레이터를 켜놓고 공사팀은 퇴근한다.
    집 한채가 이런데...

  3. 대선을 앞두고 유주얼 서스펙트를 세워놓은 느낌이 드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난 모르겠다. 좋지도 싫지도 않고 그냥 제멋대로인 캐릭터에 응원하는 편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삐뚫어진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알고 있지만, 그나마 이 시대에 신념을 가졌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4. 2주간의 일정이 모두 캔슬되었다. 그렇다고 할일이 없는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팀에게 보낸 레터

ARTICLE 2021-07-15

어떤 팀이 올해 청소년을 위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관습적으로 꿈을 묻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결정인지 걱정이 앞섰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배경에 무엇인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반드시 꿈과 희망을 가졌으리라고(또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판단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팀과 세번의 회의를 했고, 레터를 보냈다.

그 레터의 일부다.

세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합니다. 청소년과 이런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사회의 교육은 흔히 말하는 입시와 경쟁으로 요약되곤 합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대다수의 아동과 청소년이 포함된 공교육에서는 과도한 경쟁이 유발되거나,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으로 우리가 사회교육의 범위를 너무 축소하게 되는 것은 틀립니다. 교육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공교육에서 입시와 경쟁을 말하게 됩니다.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비판속에서도 입시와 경쟁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 것까요. 한정된 자원과 기회의 획득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일 겁니다. 청소년기는 자기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임에 분명하지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충분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는 것입니다. 즉, 꿈을 가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는 것은 고약한 질문이 되기도 합니다. 정해진 길 위에서 걷거나 뛰기도 바쁜데 어디로 가는 지 묻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그 질문이 필요없진 않습니다. 다만, 어디로 향하는지 목적지를 정하고 난 뒤에 길을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 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곤 합니다. 진로탐색이라는 언어가 그렇습니다. 다수의 진로탐색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직업군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이 합당한가를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꿈은 어떤 직업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곤합니다. 현재 기회중인 동사형꿈이나 형용사형꿈이라는 것에서는 진로탐색이라는 어휘선택이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는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설

ARTICLE 2021-05-18

능력은 매력을 넘어서지 못한다. 능력은 매력의 일부다. 매력은 주관적이며 상호작용에서 발발하고 동작한다. 즉 고유하고 독창적이다.

한글 만으로?

JOB SOUND 2021-05-08

흔히 행사장에 초대받고 온 손님을 내빈이라 한다.
그 내빈은 來賓이다. 오신 손님이라는 의미다. 마치 내빈과 외빈으로 구분하는 듯 내외빈여러분께...라는 말을 들으면 풋 하고 웃음이 나오곤 한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틀려서 그렇다.
한글만으로는 알 수 없는데 무턱대고 한자어를 표기하니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한자어를 쓰면 조금 더 격조 있게 들리는 것인지? 꽤나 자주 이상한 표현들이 많다.
한글만 쓰자고 작정하려면 차라리 북한식이 의미를 더 잘 표현하지 않던가.

오랜만에 강의를.

JOB SOUND 2021-04-29

코로나19 이후 강의를 거의 안했다.
대부분 온라인 강의를 요청하는 곳은 100% 거절했고,
심지어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할 테니 스튜디오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당연히 안했다.
나에게 강의는 1:다 의사소통이다.
몸과 몸짓이 포함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
그렇지 않다면 정세도가 무지하게 떨어지는 음성이나 텍스트를 주는게 더 나은데도
강의는 꾸준히 의뢰가 들어왔다.
아마 대부분 강의는 온라인으로 대체 가능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난 그런게 싫었다.

오랜만에 강의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참 불편했지만...
내가 가진 생각을 글과 말과 그림등으로 표현한다는 건 즐거운일인건 분명하다.

쓰레기를 잘 버리잔 캠페인

JOB SOUND 2021-04-24

쓰레기는 잘 버리는게 중요하지 않고 안버리는게 관건이다.
안 버리려면?
한번 생긴 비닐통쿠는 찢어져도 때워서 다시 쓴다.
장바구니 없으면 구매를 미룬다.
물은 끓여 마신다.
커피와 차는 투고하지 않는다.
배달음식 금지.
결정적으로 소셜미디어를 끊어라.
광고에 노출되고 끝없이 소비에 유혹이 생긴다.
가능할까..?

잘 생각해보면 가능하다.
다들 편하게 살려다 보니 생긴 문제다.
말타면 종부리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안되는것 뿐.

올해 GLAS애니 티져

Buscant 2021-04-24

6회임

수학(數學)

JOB SOUND 2021-04-21
  1. 공식이란 걸 외우라고 강요하던 문제풀이 시간이 싫었다.
    외우면 답을 맞출 수 있는데, 왜 외우지 않느냐고 반문하던 교사에게 잘못이 있었을까?
    무조건 미래를 보장한다는 위선 가득한 과장법은, 도박에 가까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던 그들의 직업정신이라고 해야 맞는 말인가?
    아무튼 나에게 수학은 참 힘든 과목이었다.
    중학교 때였나...?
    성적이 좋지 않은 친구들을 모아놓고 1:1로 매칭해서 방과후에 교실이 열렸다.
    한 반이 70명이 되던 때라 1등에서 10등 열명, 61등에서 70등 열명이 수업 끝나고 한시간씩 남았다.
    그때만 해도 난 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했던 시절이었다.
    그냥 외우라고 하면 외워서 시키는 대로 답을 쓰면 시험에서 틀릴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 훨씬 어려운 점수 따기라는 걸 몇 년전 수능문제를 풀면서 멘붕이란 걸 경험했;;)
    나에게 매칭된 친구는 참 조용한 성격이었다.
    수학을(무려 나에게 수학을....???)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왜?라고 묻는 대부분에 그냥 그런거야. 원래 그래....를 연발했다.
    그 과외가 있던 2-3주동안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수학에 관심이 사라졌다.
    좀 충격이 컸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문제를 풀고 있더라. 이런게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인데, 설명하지 못하면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2. 감각할 수 있는 자연계의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들과 달리 수학은 추상적인 언어다.
    미/적분이 체계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 살고 있는 현대식 건축물이 세워질 수 없을테고, 네비게이션이란건 불가능했을게다.
    피타고라스는 파동수로 음계를 만들고, 피보나치수열은 피아노 건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걸 찾아내고 계산하기 위해 언어로 만들었다는 건 여전히 놀랍다.

바보상자의 귀환?

ARTICLE 2021-04-17

어떤 토론회에 갔는데 깊이 없이 함부로 떠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예술교육 워크숍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이건 매체 같은걸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이라는 말을 했다. 대체 그는 매체를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말을 할까 싶었다. 미디어교육의 현장은 테크놀로지와 문화현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미디어교육이 새로운 매체를 소개한다는 뜻이 아니라 의사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인간의 태도가 교육과정안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play/놀이로 매체를 받아들인다. 반면 미디어교육자는 학습과제로 배우고 익혀 사용한다. 수용자의 개별 사용성에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모든 매체가 보편성(universality)을 필수요건으로 적용하고 있지 못하는데 있다. 현재를 사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체는 복합적이다. 신문은 옮겨서 편집할 수 있고 텍스트와 영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매체다. 영상텍스트는 영화관과 TV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곳으로 이동하며 유통된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디바이스의 출현은 수 백가지의 조합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미디어를 생산, 유통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단지 어린이와 청소년만의 문화는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장치로써 하나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지만, 미디어 소비의 측면에서는 개별 미디어로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은 무한한 복제와 재구조화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단일양식의 생산과 소비로 설명할 수 없다. 이미 다매체 복합양식은 보편적이다. 예를들어 내가 만든 단편영화가 테스크탑에서 보여지게 할 것인가 휴대가능한 디바이스에서 보여지게 할것인가에 따라 화질, 자막, 앵글에 대한 설정을 다르게 만들게 된다.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에서 비평과 분석을 넘어서 문화적 텍스트의 건강한 소비와 유통을 동시에 교육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선지 오래다.
청소년은 미디어의 적극적인 소비자인가-미디어생산자라는 측면은 고려해 볼 수도 없을 만큼 빈도수가 줄어들었다-를 생각해 보면 긍정하긴 힘들다. 그저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보인다. 아무리 기준을 낮게 잡으려고 해도 그렇다. 능동적인 소비자는 권리의식과 미디어의 생산방식이나 사회적 기준에 대한 기본인식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청소년에게는 그 기준으로 볼 때 수동적인 소비자에 그친다. 그 이유가 청소년에게 있지 않고, 청소년이 처해있는 한국사회의 미디어문화 환경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안타깝다. 아쉽게도 이미 창작보다는 소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비를 부추긴 것은 분명 소셜미디어다. 원치 않아도 노출되는 광고와 7-8초 내로 소비를 결정하게 만드는 자극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모든 재료는 본인이 제공하는 정보로 부터 나온다. 실로 무섭다. 습관을 누군가에게 통제당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면 난 아니라고들 답하며 항변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지금 나의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이 맞는지 말이다.

생존을 위한 도구 딱 하나.

JOB SOUND 2021-04-17

오늘 워크숍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 한가지를 고른다면? 이런 질문을 받고 도구 상가로 갔다.
용산에서 워크숍을 하니 아이들이랑 걸어서 다녀오는 게 참 좋더군.
뭔가 다 있음. ㅋ
식-의-주 순서로 우선 순위를 고르더라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불이었다.
그런데 토치를 고르는 건 너무 약한 모습이라 싫었고,
돋보기를 찾아 다녔다.
광학의 기본은 결국 모래를 녹일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도 했고,
얼어죽지 않기 위한 방법은 결국 불.
물은 나무 수액과 이슬을 모으고 증류해서 어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상상...

아....재밌는 하루였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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