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JOB SOUND 2020-12-24

살찌려고 노력 중인데 80kg가 한계다.
건강하게 살이 붙고 싶지만 쉽지 않다.
흰머리가 아직도 없다.
내년에 53세가 된다.
식단이 건강한데 비해
혈압이 높다.
뭘 먹어서 키가 커졌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것도 한게 없다.

퍼블릭 도메인 아트워크

Buscant 2020-12-21

artvee

이거 좀 유용할 듯

똑똑도서관(꽤 오래전 플라이슈에서 썼던 글)

Buscant 2020-12-21

이 글은 언제든 저작권 따위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복제/수정/모방/남발/배포/재구성을 맘껏 하셔도 됩니다. 단, 이 몇 자의 글이 모두에게 이로운 실천으로 연결되는 바람으로 쓴 것입니다 from 조인호


똑똑 도서관을 만들어 봅시다!

시민단체의 간사와 강의가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지역운동/문화운동 차 원에서 <작은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작은 도서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나는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그러다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플랜비(Plan B)의 발상으로 도서관을 만들어 보세요. 플랜비는 대안/두번째안/비상용계획안 이란 뜻이에요. 일단...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입니다. 공공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면 무료 로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데 지역사회의 문화운동차원에서 도서관을 만든다면... 단지 "책만 빌리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요.

사람들이 만나고 지역의 정보를 나누고 문화적으로 풍성해지는 어떤 상황을 꿈꾸는 것 아닐까해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작은 도서관>이든 <큰 도서관>이든 도서관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자본이 필요합니다. 공간을 구해야 하고, 책을 후원받거나 구입해야하고, 그 책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가져야 하 니까 돈이 필요해집니다. 저는 여기서 플랜비를 찾아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일단 물리적 공간은 도서관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상상해 보세요.

그냥 아파트 단지 하나를 도서관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꽂혀 있어요. 대부분 한두번 읽고 나서는 책장에서 숨도 못 쉬 고 있습니다. 좀 아깝다는 생각. 한번쯤 가져볼 만도 합니다. 바로 그런 책을 공유해보는 겁니다. 방법은 의외로 심플해요.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도서의 목록을 공개하고, 이 사업을 시작한 코디네이터에게 제출하면 되는거죠. "103동 503호 조인호의 소장도서 리스트"라고 하면 끝. 이렇게 목록을 공개한 아파트 주민은 사서가 됩니다. 일주일에 한번 또는 두 번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책을 대여하는 시스템이에요. "103동 503호는 목요일 오전 10시-12시, 일요일 오후 6시-8시에 오시면 책을 빌릴 수 있습니다" 이런식이죠. 물론 사서로 등록한 사람들은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릴 수 있어야겠지요. 코디네이터는 이런 정보를 특정매체를 통해서 교환하고 리포트하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그런건 정보공유를 위한 최소화된 홈페이지나 블로그, 조그만 소식지로도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을 아는 일이 쉽지 않아요. 서로 인사를 나눌까 말까 하면서 지나치는 이유는 뭘까요? 딱히 통성명을 하지 않아서 그렇거나, 이웃인지 몰라서 그 런 것 같거든요.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의 그림자만 보고 사는 것 같아요.

이런 도서관 프로젝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돌려보자는데 그 첫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돌려 보는 거요.
그리고, 내가 가진 책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민들은 서먹하지 않게 이웃의 집에 노크할 계기를 만들 수 있지요. 가급적이면 작위적이지 않게 노크할 기회가 생 기는 것이 아닐까해요.

똑똑.

누구세요?
네. 책 빌리러 왔어요.
어서오세요.

이런 풍경이겠지요. 내가 가진 책을 내 주면서, 그 책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부터 추천사도 들을 수 있다는 엄청난 강점이 있고, 이웃과 인사합니다. 자연스럽게 독서문화에 대한 대화의 장을 열 수 있다는 부가이윤이 생겨요. 물리적 공간으로 생각했을 때의 도서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에요. 노크와 함께 시작되는 도서관이므로 이름은 <똑똑 도서관 Knock Knock Library>이 어 떨까 합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파트단지는 그 자체로 이미 도서관이 되는 걸 상상하며 운영계획을 만드는 거에요. 플랜비의 발상으로 도서관을 생각하면 예산은 절감되고. 정말 하고 싶었던 지역사회의 대화문화만들기와 책 돌려보기(?)를 통한 지식생산. 자연스런 도서추천과 토론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지역도서관이 참여한다면 더 많은 발상들이 가능할테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건 더 많아질 것이에요.

오/늘/당/장/지/금/바/로/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해보자구요.

Barking Dogs Never Bite (2000) and Parasite (2019)

Buscant 2020-12-21

영문으로 쓴건 아니고, 영작한걸 꼼꼼히 읽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트랜드로 소개하는 영화.

Barking Dogs Never Bite (2000) and Parasite (2019)

ㅇㄹㅂㄹ 시즌1-8 기획노트

ARTICLE 2020-12-21

2010년에 시작한 어린이 예술캠프 “우락부락/友樂部落/ㅇㄹㅂㄹ"은 친구가 있는 즐거운 부락이라는 타이틀로 어린이 여행을 기획 운영했다. 캠프는 비일상적 공간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본디 여행이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로가 있다고 본다. 혼자 또는 여럿이 다니고, 훌쩍 떠나거나 꼼꼼히 계획해서 간다. 그 모든 것이 힘든 상황이거나 환경일 때 여행프로그램안에 몸을 맡기게 된다. 어린이와 예술가가 함께 떠나는 여행은 놀이도 교육도 아닌 그 어느 애매한 위치에 선다. 누군가는 그 여행을 기획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즐긴다.

시즌1. 상상마을 창작 놀이터

  • 비일상적 경험과 삶의 동기에 주목한다. 캠프는 캠퍼의 비 일상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생활의 근거지에서 벗어나 잠깐 스스로 외로운 자기를 만나거나, 짧은 여행으로 일상과 다른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게 된다. 2박3일 짧은 여행에서 생기는 경험은 비일상적 경험의 축을 만나 조금 다른 자기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런 경험적 자극이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비일상적 동기는 다시 돌아올 일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마치 한 예술가의 삶이, 일상성과 비 일상성을 넘나드는 경계에서 발견한 자기 성찰이 되는 경우와 닮아 있다.
  • 아티스트와 놀다. 방학이 되면 각종 교육프로그램과 캠프가 생긴다. 하지만 교육캠프 또는 체험캠프라는 제목으로 주최되는 캠프가 식상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 이유는 /장르교육의 성격이 분명할 경우/ 단기간에 큰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기존캠프들과의 차별성 없는 프로그램정도라고 보여 진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이번 캠프는 예술교육이라는 의미보다는 예술캠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합한 표현이 된다. 교육이 중심 키워드에 놓이게 되면 교육 과정에서 생산된 결과물에 너무 많은 의미(교육적 성과, 윤리 의식, 예술적 완성도 등등)를 포함 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 더 가벼운 예술에 대한 기대. 『이것은 예술이다 vs.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의 경계는 허구에 가깝다. 그럼에도 특정한 기술을 연마하여 예술가가 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인간의 역사에서 예술이 가지는 탐미적 경향이 우리 감각을 놀랍도록 진보시킨다. 그래서 예술가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감을 준다. 하지만 예술과 비예술이라는 것을 갈라놓을 수 없기에 거리의 낙서가 감동적인 예술로 보이거나, 모래사장에 새겨 넣은 짧은 시가 어느 개인에게는 그 어떤 규모의 뮤지엄과 갤러리에서 보다 훨씬 큰 예술적 영감을 주는 것이다. 수년간을 기능적 연마를 통해 달성된 완성도 높은 예술이 있는 반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도 있다는 예술적 지형에 대한 수용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이 캠프는 단기간의 집중력과 방학이 되면 각종 교육프로그램과 캠프가 생긴다. 하지만 교육캠프 또는 체험캠프라는 제목으로 주최되는 캠프가 식상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 이유는 /장르교육의 성격이 분명할 경우/ 단기간에 큰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기존캠프들과의 차별성 없는 프로그램정도라고 보여 진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이번 캠프는 예술교육이라는 의미보다는 예술캠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합한 표현이 된다. 교육이 중심 키워드에 놓이게 되면 교육 과정에서 생산된 결과물에 너무 많은 의미(프로그램의 밀도를 높여 더 가벼운 예술과 심미적 체험이 생기는 것을 지향한다.

시즌2. 지구에 남기로 결정하다

2010년 여름에 이어 두 번째 예술교육 캠프다. "지구에 남기로 결정하다" 이런 주제어는 약 간 어이없고, 허망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고 야망과 욕심보다는 쿨한 단념이 들어 있기 때문에 설정했다. 우주시대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 우 주는 동경 또는 두려움 같은 것에 가깝다. 뭔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다들 발맞춰 우주를 정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서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 다. 캠프에서 놀이는 주요 키워드로 작동한다. 어린이는 놀이로 타자를 인식하며, 세계를 학습 한다. 어린이의 특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의 허용범위에서 누리는 특권이기도 하다. 또한 아직 더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남겨져 있기 때문에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인정함과 동시에 건강한 실패는 학습과정으로 인정할 수 있다. 캠프의 기본 배경은 아티스트와 건강한 놀이터 를 만드는 것이지, 아이들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해 가는 것과는 거리 가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기획한 프로그램이기에 근사한 포장에 욕심 내야 하 는 현실적 이유를 찾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도 된다. 캠프를 기획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재미있고도 놀라운 동영상하나를 발견했다. 2010년 평범한 아빠와 아들이 헬륨풍선에 GPS를 장착한 카메라를 매달아 띄우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발견한 이 작업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실험과 실패의 과정이 담겨 있었고, 이들이 어떻 게 이 작업이 가능했었는지 몇 줄의 설명이 있었다. 영상에는 몇 만 피트까지 올라갈 수 있었 고, 촬영된 영상에는 바람소리와 구름위에서 바라본 둥근 지구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감동의 코드는 아이와 활짝 웃으며 지구로 귀환한 카메라를 찾아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학 교의 과제로 이런 것을 수행했다면 결과물은 같은 수 있겠다. 그리고 어떤 공모전에 내보내기 위한 프로젝트 였다면 더 멋진 영상기록이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아파 트에서 낙하산을 실험하고, 아빠의 차를 타고 가서 카메라를 수거하는 그 경험은 즐겁고 신나 는 경험처럼 자연스러울 순 없다. 만약 과제였다면 이런 일상성에 근거한 작업이 가능했을까? 자연스럽고 유쾌한 경험은 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10년...20년...이 흘렀을 때 어떤 차이를 만 들어낼까. 캠프의 기본 개념은 이렇게 출발한다. 무엇인가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학 습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아티스트와 놀며 즐거운 경험을 남기는 것이다. 이 캠프에 왔던 어린이들이 10년 후 20년 후 언젠가 이 경험을 떠올리며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곳 에 미세하게 영향을 주어,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내는 자연스럽게 용해된 삶의 작용 매개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의 상상력을 때로는 비생산적인 공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매일 생 산적 활동만을 하거나, 먹고사는데 도움되는 일만 하며 살진 않는다. 생각해 보면 모두의 웃 음거리가 되었던 하늘을 날겠다는 청년들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은 비생산적 공상이 기초가 되 었다. 어린이들은 접근 불가능했던 세계에 대한 꿈을 꾸고, 자연스러운 경험으로 체득한 상상 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번 캠프는 과학적 상상력이 예술과 만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비 생산적 공상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하는 작업이다. 마치 하루 하루의 시행착오로 비약적 결과를 만들어낸 과학적 상상력이, 하루 하루의 일상과 문화를 담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 술과 꼭 닮았다. 이번 캠프는 겨울방학에 아티스트와 2박3일을 고흥 우주센터에서 보내며 과 학/예술/스토리가 담기는 다소 비생산적 공상의 장이다. 아이들은 총 세 개의 카테고리에서 아티스트를 만난다. 첫 번째 카테고리는 [과학이 꾸는 꿈 '예술', 예술로 조각한 '과학']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테크놀로지와 예술은 참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그 둘은 원래가 한 몸이어 서 이런 구분이 생긴 것은 현재에 와서야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복합양식 의 예술 영역이 자연스레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에게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과학 과 예술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작용하는지 작업하면서 스스로 알게 하는 워크숍이다. 소리, 광원, 빛이 모여드는 순간의 기록 등을 다루며 원인과 결과를 자연스럽게 추론하는 과정이 표 현되는 워크숍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지구에 남기로 결정하다]인데 이 캠프의 주제어임과 동시에 아이들의 스 토리를 담고자 하는 노력이다. SF작가는 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스토리는 독자와 호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인류는 별의 모양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때로는 신화이고 때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상징이 되었다. 통계의 범위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가 우리 사는데 어떤 영향력을 주는가를 살펴보거나, 이 주제를 객체로 바라보며 스토리를 정리하는 워크숍이다. 세 번째 카테고리는 [우주와 소통을 시도하다].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지르거나, 퍼포먼스를 기획하면서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소통의 장으로 가져오는 작업이다. 우주와 소통하는 '나'의 존재와 존재이유 같은 것을 다루되, 철학적인 것을 바탕에 두는 것이 아니라 타자(또는 외부 의 세계)와의 소통을 중심에 두는 워크숍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비 물직적 가치 등을 캐릭터로 만들거나 우주시대를 시작하며 있었던 비극적 사건들을 떠올리며 합창을 하는 워크숍이다. 없던 꿈과 희망이 2박3일간 생겨야 한다는 허망한 기대는 꽉 막힌 어른들의 생각이라고 본 다. 이런 기획은 단순하고 쉽다. 이미 내재한 씨앗을 가진 아이들이기에 굳게 믿으면 된다. 잠 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건, 건강함의 증거란 걸 받아들이면 아이들이 마을을 열고 온전히 기대며 소통을 기대한다. 줄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면서 희망이 사라지는 경험을 우리는 이미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이들을 믿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캠프에서 멋진 장면을 못 만들까 두려워 짜여진 프레임안에 아이들을 가두면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꽤 뻔한 감각적 환희를 줄 수 있다. 스스로 찾아낸 여유에서 오는 잔잔한 감정의 파장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일까. 아티 스트를 만나 교감하여 생긴 스파크가 아니라면 멋진 공연이 무슨 소용일까. 감각이 주는 즐거 움은 순간을 만족시킬 수 있겠으나, 문화적 경험은 평생을 살아갈 힘을 만든다. 선택은 분명 하다. 다만 실행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이상, 현재의 자기 가 보이는 오늘을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스페이스 셔틀이 놓여진 공간의 모습과 이벤트 들의 감각적 즐거움은 한 순간 사라지고, 아티스트와 이 공간에서 침 한 방울 뚝 떨어지는 걸 모를 정도로 달리던 기억은 몸에 꼼꼼히 저장되어 기억으로 보존된다는 확신이 든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 어른들의 질문에 스페이스 셔틀과 로봇을 봤다고 대답하겠지만 아이들이 진 짜 본 것은 아주 깊은 곳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가 조건이 성립되는 어느 순간 툭 하고 터 져 오를 것을 믿는다.

시즌3. 열두개의 아틀리에

  • 작업실과 전시실 / 연습실과 무대 / 실험실과 심포지엄 예술가의 작업실은 에술가의 생각이 예술행위를 전시실로 연결하는 튜브와 같은 공간디다. 형태와 장르에 따라 공작실, 연습실이라고 부른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때로는 사적이고 비밀스런 공간이다. 이 공간을 오픈한다는 것은 작업과정을 공개한다는 의미다. 즉, 결과물보다는 행위에 집중하고, 드러나는 것 보다는 가려진 것을 보게 되는 특권 같은 것이 아틀리에를 공개한다는 캠프의 기초 컨셉이다.

  • 아틀리에에서 예술교육이 일어난다는 것 예술교육의 장이 아틀리에가 된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특정 작업을 완성한다기 보다는 초기작업을 상상하는 것을 필요하다. 예술교육의 장으로 초대된 어린이는 아티스트가 되고자 배우려는 것이기 보다, 이 작업을 통해서 다양한 삶의 경험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험을 아틀리에와 아티스트를 통해서 했는가에 따라 어떤 어린이는 아티스트의 꿈을 꿀 수 있고, 어떤 어린이는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며, 또한 어떤 어린이는 예술가의 삶을 지켜보며 세계관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 숲이 주는 공간감. 깊은 숲에 들어가서 제일먼저 하는 행동은 맑은 공기를 마신다. 평소에 마시던 공기와 다른 맛을 느끼게 되는 경험인데, 그것은 조금은 차갑고 신선하다는 청량감을 준다. 숨을 들이쉬고 내 쉬는 행동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한 이해들을 하는 것이 필요해 진다는 의미다. 숲은 사람에게 상호작용을 만든다. 실내에 아틀리에를 만들고 작업하는 것과 함께 숲의 공간감을 최대한 살려주시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 자연의 효율적인 시스템 낭비없이 모든 것이 쓰이는 것이 자연이다. 하나의 유기체이기에 자연은 쓸모있음과 없음에 대한 구분을 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것이 때가 되면 마르거나 썩어서 형태를 바꾸고 순환한다.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이 시스템을 끊임없이 닮아가려는 노력이 이 공간의 아틀리에서도 필요하다. 반면 예술은 시스템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인위적인 노력으로 시작해서 결국 가장 자연스러운 효율성을 만들거나 구조화된 작업환경을 이끌어 낸다. 이 두 가지가 참 많이 닮아 있다. 더구나 사람들은 시각경험을 카피하고, 인식은 모사와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예술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이 예술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영감은 자연에서 빌어온 것이며 뉴미디어 테크놀로지 역시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있는 자연속에서 찾아낸 시스테메틱한 조형과 모듈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틀리에를 꾸미는 컨셉에서 엄청난 장비를 이곳에 들여와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캠프는 자연의 효율적인 시스템에서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물리적공간을 이동하는 이사가 아니라 정서가 이동한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으로 이 캠프가 구성된다.

시즌4. 비밀의 방

이건 비밀

시즌5. 숲풍

  • 비선형성_Nonliear 문화/예술/교육이 떨어지지 않고 하나의 고유명사화되는 과정에서 경험적으로 얻게 된 것은 선형적 방식으로 삶과 분리되지 않고 교육행위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 지향하며 얻게 된 것은 완성도 높은 커리큘럼이며, input과 output이 분명해 져야 한다. 문화예술의 향유자 권리의 관점은 "경험재인 문화와 예술이 더 많은 인구에게 보급되고 나면 문화예술로 인한 한 단계 높은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분명해 진다. 문화예술교육 진흥원의 사업이 이 기본적인 관점과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캠프는 그 선형성에서 벗어나야 하며, 벗어날 수 밖에 없다. 일상적인 공간을 떠나는 물리적 이동이 그렇고, 짧은 스케줄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그렇다. 비 일상적 공간을 만나고 비 일상적- 2박3일간의 컴팩트한 문화예술교육- 행위를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자기 모습에 대한 탐색이 된다. 캠프로 운영되는 문화예술교육이 실험적(실험은 실수가 아닌 실패에 대한 건강한 경험을 소중히 다룬다)성격을 갖고 있으며, 기승전결이 있는 일상적 교육커리큘럼과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 여행 아티스트는 2박3일의 일정을 풀어놓으면 6개월에서 1년의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압축적인 성격을 갖는 캠프의 특성에 맞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새로운 교육내용을 만들어 우락부락으로 가지고 들어온 경우도 있고, 우락부락을 경험하면서 아티스트의 세계가 바뀌기도 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락부락 시즌4까지 오면서 아티스트가 캠프주제로 크로스오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왔다. 그 결과 우락부락 이외의 캠프에서 주제가 제안되고, 문화적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기획이 나타나고 있다. 장르별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주제의식을 드러내려고 하는 시도들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락부락의 사회적 영향력이다라고 섣불리 말해선 안된다. 단지 우락부락이 딱 한발을 먼저 뗀 것이고(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십년/수백년전에도 이런 요구와 문화는 있어왔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다) 현재 우리사회의 문화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뿐이다. 시즌 5가 그래서 또 다른 한발을 내 딛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혀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사회의 문화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수용하는 범위를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시즌5는 예술콘텐트가 살아있으면서도 문화적 수용력을 넓히는 과제를 안고 시작한다. 특정 예술콘텐트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여행의 문화" , "즐거움으로 남는 소풍과 친구" , "스스로 생산한 기억"이 드러나는 형식을 취하여 그 안에 자연스럽게 "경험과 행위로써의 예술"이 자생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시즌6.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살아

  • 우락부락으로 놀다. 우락부락은 "아티스트와 놀다"를 기초에 두고 기획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의 실험적인 장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특정 장르를 뛰어넘자고 수년간 외치고 있지만, 현실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로스오버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지 못한 우리사회 예술교육시스템에서 아티스트가 크로스오버 교육을 실행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락부락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놓인다. 장르를 앞세워 다양한 예술교육을 소개하는 여행식 교육프로그램 버전을 생산하거나 장르를 숨겨놓아 문화적 텍스트 안에 예술을 은근히 내려 놓는 방식의 두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우락부락은 후자를 택했다. 클래식작곡가가 서점에서 전래놀이를 찾고, 사진작가는 가면을 만들고 그림자극을 연출했다. 회화작업을 하던 아티스트는 숲에서 몸의 움직임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일러스트작가는 각국의 식재료를 소개하고 요리를 한다. 막상 캠프의 현장에서는 아티스트의 예술적 기질과 장르적 손길이 적용되며 자연스럽게 놀이로 전환된다. 우락부락의 여섯번째는 이전 다섯번 캠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 여섯번째 우락부락은 커뮤니티. 시즌 6는 삶의 터전인 우리 동네의 이야기다. 지역은 어린이에게 크게 느껴지는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다. 쉽게 쓰는 말로 마을이 있겠으나 그보다는 동네가 더 친숙하다. 동네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특히 우리동네는 걸어 다니며 감각할 수 있는 개념이다. 동네에는 친구가 있고, 함께 해야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 다소 위험해 보이는 후미진 곳을 친구와 찾아가며 놀이는 시작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모험의 공간이다.á현재 아이들에게 동네는, 놀이와 모험을 공유하는 곳이 되긴 어려워보인다. 어린이는 부모와 사회로 부터 멸균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필요이상으로 안전하게 자라고, 놀이터는 CCTV가 감시한다. 더구나 골목길에서 만난 수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기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동네가 온통 불안요소 가득한 공포로 바뀐다. 동네에서 뛰어놀며 스스로 몸의 면역체계를 만들고, 다양한 경험으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만들며 성장할 수 없다. 이번 캠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동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누구와 어떻게 놀까를 고민했다. 살아있는 동네의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던 거다.á시즌6가 우리동네의 어린이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갑자기 붐처럼 불어온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환기다. 공공기금을 들여 지역으로 아티스트나 문화작업자가 파견되고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참여하여 예술행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역민이 참여하여 그리고/노래하고/춤추고/만들고/촬영하고/공연한다. 이런 행위가 커뮤니티아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건 공공기금이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면 예술행위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다른 공공기금을 찾아보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문화행위라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듯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동네에는 예술가가 살지 않아? 진짜 없을까?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예술행위가 실제로 동네에 있다. 더구나 어린이는 매일ᅠ그리고/노래하고/춤추고/만들고/촬영하고/공연한다.á매일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티스트다. 우리 동네에는 수 많은 아티스트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동네의 수 많은 아티스트를 찾아내고 그들과 놀이를 시작해보자는 말이다.

  • 공작새 간혹 공작새를 보면 깜짝 놀란다. 상상의 동물이거나, 어느 판타지소설에서 봤을 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는 공작새같은 존재다. 언제나 현재를 사는 이 사회에 섞여 있으면서도 아주 오래된 과거를 말하고 있거나, 먼 미래를 현재로 끌어다 놓기도 하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남들처럼 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없을 것 같으면서도 우리 가운데 있고, 예술세계가 활짝 펼쳐질 때면 많은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는 존재다.

  • 미성숙한 어른에게 말하는 어린이의 목소리 어느 나라는 착한일을 하면 키가 커지고, 나쁜일을 하면 키가 작아집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여러분 모두 착한일을 하세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착한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 어제 착한일을 했더니 키가 2cm나 컸다~ 좋겠지 좋겠지? 무슨 일을 했냐구? 응.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물에 빠진 고양이를 구했거든!"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며 "와 좋겠다. 나도 어서 착한일을 해야 할텐데..."라며 좋은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일을 하려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방학이 되자 아이들은 착한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가 쑥쑥 자랐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부쩍 커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 다들 키가 많이 자랐네요? 착한일을 많이 했나봐요."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어. 선생님은 왜 키가 그대로죠?" 방학이 끝나자 이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키가 제일 작았습니다. 이야기 끝~

이 이야기는 어린이가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옮긴 것이다. 처음에 이 작품을 보고 귀엽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미성숙하게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른들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때로는 모사하고 모방하며 배우고, 때로는 거부하고 저항하며 자기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 어린이를 바른길로 안내하는 것이 캠프의 몫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고 있는 아티스트의 존재 자체가 캠프에서 드러나면 된다. 그 모든 여백은 놀랍게도 어린이가 알아서 채운다. 그 힘을 믿으면 된다.

시즌7. 노란잠수함

시즌 7은 어린이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 받는 대중예술을 중심으로 다룰 시기적 고민이 담긴 캠프다. 아이돌 스타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으면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즉, 현재의 대중예술은 "대중적"예술이 아니라 "상업적"예술이라고 말해야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어떤 기점을 통해서 구분해 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속칭 클래식음악이라고 부르는 순수예술에서 아티스트는 굳이 음반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예술가는 음반을 만들어 대중과 만난다. 여기서 매개가 되는 예술적 형식은 현장성과 복제된 예술로 구분된다. 극단적 방식의 구분이기는 하지만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매개의 형식, 복제의 가/불가, 구매 또는 지불방식의 차이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21세기 어린이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양한 대중예술을 접하며 산다. 거리에서, 핸드폰에서, TV에서, 인터넷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렇지만 대중예술 코드를 학습한 적도 없고, 그 역사에 대한 관심도 적고 단지 소비의 주체가 되기 쉽다고 생각된다. 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의 문화예술의 현재가 그러하다. 더구나 노란잠수함은 전세계에서 수도 없이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동화책을 비롯하여 소설과 에세이에 영감을 주었다.하나 덧붙이지면 노란잠수함 앨범은 영국의 조지 마틴경이 작곡한 클래식 넘버가 수록되었다. 비틀즈방식의 기타와 드럼비트가 들어간 락앤롤이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앨범의 절반을 채운다. 그리고 비틀즈의 곡도 새로운 곡이 아니라 기존 비틀즈 곡의 편곡을 통한 새로운 버전이 수록되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동시에 존재하고, 복제와 재구성이 자유롭게 구현된 형식이다. "대중예술의 정수"라고 까지 말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노란잠수함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서 "평화"의 세계관에 대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솔리드컬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알록달록하여 언뜻 보기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나 싶다가도, 그 내용의 깊이는 상당한 수준에 있다. 시즌7은 비틀즈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대중예술이 무엇인지 해석하고 현재 우리가 어떤 문화와 예술환경에서 예술을 누리거나 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지점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우락부락의 방식에 근거하여 그 모든 내용은 자연스러운 놀이로 전환되고, 다양한 카피와 재구성 재생산을 통하여 대중예술의 "개념"이 용해된 캠프가 될 수 있다.

비틀즈의 노란잠수함(yellow submarine)을 검색해 본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비틀즈의 명반인데 정작 비틀즈의 원본 앨범재킷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더 많은 이미지는 대중이 커버한 다양한 아트워크들을 만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술세계가 펼쳐졌다는 말이다.

시즌8. 두 번째 호기심

어린이는 궁금하다. 왜 구름은 하늘에 떠 있을까가 궁금하기도 하고, 꽃은 왜 들판에 피어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람과 사물...크게는 자연의 존재방식에 대한 궁금증에 해당된다. 답이 없어서 더 궁금해 지기도 하고, 답을 알아도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9달을 넘게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어떻게 된건지 속시원히 알려주는 사람도 만나기 쉽지 않다. 모든 인간은 개성을 가지고 성장한다. 모든 인간이 다 다르듯 궁금증의 주제나 범위도 다르다. 궁금증의 촉발은 호기심으로 부터 시작한다. 나와 타자가 왜 다른지 알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하면서 알게된다. 그래서 "왜........?"라고 반복하여 묻는다. 이번 주제인 "호기심"은 무조건 어른들을 알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며 무턱대고 질문을 던지는 어린이에서 벗어나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이는 지적호기심을 갖게 되는 때가 있다. 어린이는 자신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시간을 만나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어른들과 개념어로 대화하기 시작하면서 가속화되지만, 그보다는 경험과 학습을 통한 지적 능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된다. 반복적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10세를 전후로 하여 논리를 쌓아가며 호기심이 생기는 것. 즉, 나의 궁금증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궁금해 하는 때가 "두 번째 호기심"이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 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소통을 시도한것이라고 축소시켜 생각해 본다면, 어떤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예술세계가 만들어졌는가를 기억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기억은 고스란히 예술교육이 될 것이라고 확신다. 쓸데없는 일을 벌이고 실수하면서 만들었던 다양한 경험과 기억이 아티스트를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세계관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의 집합이다. 즉, 그 경험적 환경을 어린이에게 제안하는 것이 예술교육을 출발이라는 관점으로 캠프는 기획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으로 초대된 1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아티스트는 어떤 예술적 호기심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캠프는 완성된다. 아티스트는 무엇을 궁금해 했는가. 질문을 던져보자.

Woodstock Music and Art Fair

ARTICLE 2020-12-20

2차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는 윗세대에게 낭만을 비판받았다. 몸을 부비며 강렬하게 싸우던 젊은이는 사라졌고, 꽃을 들고 낙원으로 도피하려는 모습이 곱게 읽혔을리 없었다. 안일한 히피들의 무절제만 눈에 보였을 것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알겠냐며 코웃음을 쳤다. 베트남전이 발발하고 원치 않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친구와 가족의 시신이 도착했을 때도, 기성세대는 평화를 말하기 보다 승리로 애국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혼란의 시기에 일어난 아름다운 저항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1969년 8월 15일 우드스탁 페스티벌. 먼나라 미국의 이야기다.

우드스탁의 2박 3일은 평화를 말하는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사상과 이념을 말하기 보다, 무엇하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 옹졸한 사회안에서 만든 거대한 일탈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Joe Coker가 1969년 우드스탁에서 With A Little Help Of My Friends를 부르는 영상을 보곤한다. 몇 년 전 그의 명이 다하기 직전인 나이 일흔에도 공연에서 이 노랠 불렀다. 무대에선 백발의 노인이 서있었지만 난 언제나 우드스탁의 공연장이미지가 오버랩되곤했다. 그리고 평생 뮤지션으로 사는 동력이 우드스탁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곤 한다. 긴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초월적 순간이나 상황에는 농도짙은 감동과 뭉클함이 있다.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 주는 특별함이나 어린시절에 경험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 그건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두고 두고 자양분이 되는 것이 아니던가.

컬쳐뱅크_키친_드래프트

ARTICLE 2020-12-19

1 커뮤니티

한국사회에서 다수의 인간이 누리는 물리적 공간 “집”과 “지역”의 선택은 경제력에 달려있다. 어느 지역에 살 것인가 뿐 아니다. 집의 규모와 모양새 역시 그렇다. 서울에 살기 위해서는 교통체증을 견뎌야 하고, 포화상태의 문화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 휴식 또는 쉼이란 개념으로써 집이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나 재화가 우리 삶의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런 상황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개념을 근대이전의 마을공동체에 대입하거나 모델로 삼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공지원에서 커뮤니티가 개인화된 현재의 삶과 경제력에 따른 근거지 선택을 간과한 채, 공동체의 복원을 이상향처럼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우리는 빈곤포르노그라피의 천박한 상품성을 인식하는 사회로 진입했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단지 힙스터가 버리고간 문화가 아니라 부동산투기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현재 커뮤니티를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복원의 대상인가 새로운 조합인가. 이러한 논의를 조금 더 진전시키면서 단지 “정이 넘치는” “훈훈한” “즐거운”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커뮤니티에서 나의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고, 사생활을 지킬 수 있고, 남아돌지 않아도 충분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2 한국사회의 가옥구조

가옥구조를 들여다 보면, 가족 구성원이 모일 수 있는 곳은 거실과 식탁이다. 최근들어 거실에 TV를 없애고 원탁을 들여놓아 대화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반면, 식탁은 어느 순간 가사노동이 홀로 고립된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로 오픈 되었다. 그 덕분에 주방과 식탁이 같은 곳에 위치하고 거실과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안방에 모여서 밥을 먹는 드라마 속 장면 처럼 주방과 분리된 식사 장면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덕분에 식탁에 모여 앉는 시간은 정해진 약속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배를 채우는 문화로 바뀐다. 현대인의 바쁜 삶에서 빨리 먹고 빨리 치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모이기 보다는 각자의 쪼개진 스케줄을 맞추느라 주방과 식탁이 효율이 넘치게 디자인된 것이다. 이때 식탁은 터미널의 기능은 하지만, 의사소통의 기능이 없다. 이때 정해진 룰이 아닌데도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버즈아이뷰로 보는 것이 필요할 듯.

3 비건의 도시락

우리 사회에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채식주의는 일종의 환경운동이며 비건은 한개인에게 사회에 던지는 선언과 같다. 채식전용 식당을 찾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채식을 위해서라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식사자리를 피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진다. 단지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어딜가든 자극적인 양념과 과한 당류가 식당에서 제공되니 피하는 것이 더 힘들다. 최근들어 회사내부에서 음식이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결국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다보니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혼자 만들어야 하는 도시락은 개인에게는 버겁다. 한끼를 준비하기 위해 재료를 사는 것 부터 다양한 메뉴를 만들 수도 없다. 만약 당뇨식이라면 어떨까. 신장투석 중이라면 염도의 조절은 필수다. 이런 식사를 준비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아침모임이 있다면 충분히 이용할 만한?

4 생일 또는 파티

언제부턴가 생일파티를 식당을 찾게 되었다. 물론 편의성에서는 식당에서 밥먹고 헤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바쁜 현대인(참 지겨운 표현이다)에게 편의성 보다 좋은 것은 없다. 신경쓰지 않아도 돈내면 누군가 해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럼 사람들은 이 키친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커뮤니티 키친을 이용할 이유는 없다. 생일상을 마련해 주고 같이 장보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흔쾌히 내주는 부모에게 이 키친은 유용하다. 자녀의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이고 따뜻한 쌀밥을 지어 김치와 함께 한끼를 먹고 맛있는 디저트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공간이 집이라면 불가능할 수 있다. 여러명이 앉기도 불편하고, 주방이 좁다면 유용하지 않으려나?

5 레시피

레시피는 온라인에 흔하다. 지금은 먹고 싶은게 있으면 웹에서 검색을 하고, 흔하디 흔한 블로그를 뒤진다. 읽기도 귀찮다면 유튜브를 본다. 참 편리한 방법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묻지 않는다. 커뮤니티안에서 레시피를 모아보는 것은 이런 편리함을 뒤로 하고 키친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써놓은 흔적의 결과를 모으는 작업이다. 효율적인 레시피는 일단 스킵.

공부방운동과 지역아동센터_인력양성에 대한 제안의 일부

ARTICLE 2020-12-19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화되면서 노동문제와 노동자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은 빈부의 격차였고, 슬럼화는 특정한 지역에서 생겼다. 도농간의 격차는 말할 것도 없지만 도시내의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차이가 가속되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지불능력의 유무에 따른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문해교육을 기반으로 했지만 결국 지식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야학등의 시도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빈곤지역의 아동/청소년의 보육과 교육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공부방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지역의 공부방을 정부지원사업(교육 또는 복지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 중 하나로 현재의 지역아동센터라고 사업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사업은 행정의 프레임안으로 들어와 설치 및 운영을 위한 시스템을 갖춘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공부방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과정이 설계되지 않았다.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는등 가치지향을 가졌던 인적자원이라기 보다는 일터로 바라보는 실무인력이 대거 유입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즉, 공부방 또는 지역아동센터는 정부지원사업을 수행해 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로 자리하게 되었다거나, 규정에 근거하여 움직이는 바람에 지역(동네)마다 다른 형식과 내용을 수용하는 것에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지역아동센터가 구성되면서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공부방이 설립되었던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뭇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교육의 문제는 세분화되었지만 변화한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려는 인력이 양성되고 있다기 보다는 행정과 실무를 중심으로 인력이 양성되고 있다.

위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을 때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결국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협회가 존재하고, 재교육프로그램이 생산되었다. 사회복지실무자의 각종 연수라거나, 아동/청소년문제를 직접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개입하여 강좌들을 개설했다. 인력양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대응방식 역시 정부주도 사업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커리큘럼에 근거하여 강좌를 듣고, 수료증을 발급받았다고 하더라도 결론적으로는 경험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우리사회 아동/청소년과 관련한 시설 및 단체에 내재하는 인력양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조금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인력(성장)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을 제안하는 것은 가능하다. 처음부터 조직을 만들어서 사업을 실행하는 것으로 승부를 낼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는 것 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것이다. 하지만 현재 운영중인 지역아동센터의 존립근거나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지원사업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은 굳이 해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내적 동기를 찾아내고 변화의 동기나 사업방법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안하는 것은 결국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리더의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후략)

Make it Soul

Buscant 2020-12-19

제임스 브라운과 솔로몬 버크의 스토리.

허연얼굴에 수염달고 카우보이 모자쓴 백인들의 컨트리뮤직 같은건, 제임스 브라운이나 솔로먼 버크의 소울을 듣다보면 토할 것 같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는 방식에는 근본적 결함이 있다

Buscant 2020-12-16

인공지능 훈련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이런 글 읽을 때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가 미디어속에 등장하는 세계와는 진짜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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