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의 처세술 또는 권의지계(權宜之計)

ARTICLE 2021-03-13

처세는 타인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을 지칭하니 결론적으로는 관계방식에 대한 표현이다. 긍정적으로는 적응력이나 융통성이 발휘되는 것이지만, 얇은 귀 또는 철학의 부재와 임기응변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세+술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기 보다 사회관계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처세술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이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심지 없이 휘둘리고 사익만 취하는 방식을 지칭하니까 그렇다.

우리사회, 절대다수의 교육현장은 어떤가. 우리는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교육장면에서 교육자는 답을 잘 알려주는 사람이어야 생존하게 된다. 전인교육이고 나발이고 당장 교육자가 먹고 살기 위한 생존법 또는 처세술이 발동한다. 내용은 말뿐이고, 형식이 주도하면 우리는 어떤 해법에 다가가는 길을 잃는다. 다수의 문화가 내놓은 정답 강요. 이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면 교육자는 그저 피교육자와 그 이해당사자의 욕구에 순응하며 밥벌이를 하는 것 이외에 시도할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답을 요구하는 피교육자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난감할 필요가 직업적으로는 없어진다는 뜻이다. 일단, 가르치는 것은 전문성이 그리 많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의 역할인지가 끝나고 나면 바로 커리큘럼이 요구된다. 교육내용을 확정하고 성취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은 성취를 위한 학습계획에 따라 구조화되고, 학습성취가 부족할 경우 보충하며 최종 목표에 다다르는 것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예상하는 범위의 성취와는 차이가 있다. 그 예측이 때로는 부작용이 되기도 한다. 교사의 성취정도와 학생의 성취정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며, 개인의 능력과 교육장면의 환경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육 커리큘럼을 생산하는 교육자가 아무리 성찰적 개인이라도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피교육자를 "이윤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개인의 목표를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시스템안에서 무력하다.

관찰

ARTICLE 2021-03-13

많은 예술과 표현에서 관찰을 만나게 된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매일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려는 노력이 예술로 쌓이게 되는 결과다. 감동은 무엇에 의미부여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속성이 있기에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닿아있다. 즉 공감의 성취물이다. 관찰은 어떤 특정한 대상을 분석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곤 하지만, 예술행위 또는 예술교육에서 관찰은 분석 이전의 단계를 지칭하게 된다.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침잠으로 부터 시작되는 시간싸움이다. 관찰의 주요 대상은 일상이다. 일상을 관찰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단지 특정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감각을 열어두고 대상에 침잠하는 과정은 단지 대상의 외형적 변화를 감지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선, 시간에 대한 감성이 열린다. 우리가 무감각하게 누리는 광원은 태양으로 부터 온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밝기와 위치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바뀐 것을 보게되는 듯 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왜 모를까 싶지만 통합적 감각을 열어두려 노력하고 보면 시간의 흐름이 신기하거나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대상을 보는 것에서 지각된다. 그 지각에서 그치지 않고 대상체가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그늘이 눕거나 사라지는 경험이다. 여기서 "순간"이 무엇인가. 필연 속 우연의 연속이며/시기는 알 수 없으나 패턴으로 예상되며/수를 셀 수 없는 간섭의 조건을 포함한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이라 걸 감각으로 느끼면 그제서야 자신의 경험영역으로 수용한다.

관찰과 일상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의 관찰과 기록은 경험을 타자화 시킨다. 수 많은 예술이 아티스트의 자기표현에서 나왔다는 것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개인의 세계관이며 그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개인이 보고 듣고 만지는 감각과 대상체의 연결을 시도하면서 개인의 감각과 감정 또는 경험을 내면에서 외부세계로 내보내고 다시 받아들이는 순환을 반복하면서 타자화된 자기 경험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야 비로소 진짜 자기의 순수한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거나 보편성이라는 애매한 경계속에서 명제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단지 그것이 개인과 대상체와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참여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더 분명해 진다. 일상은 매일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반복은 같은 것이 되풀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의 같은 패턴화에 대한 인식이다.

“자신을 소재로 자기 표현이 이루어지고 나면 거기에서 ‘나’는 사라지고 타자화된다” -Nicolai Hartmann

“오브제는 세상을 사는 인간의 기호이다.”–Roland Barthe

데이빗 린치와 모비

Buscant 2021-03-13

데이빗 린치에 대해 말하자면 며칠 걸린다..라고 하고 싶지만 도저히 잘 말할 자신이 없는 감독이다.
모비는 일렉트로닉뮤직 하면 떠오르는 뮤지션이고,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 유명한 Extreme Ways를 만들었다.
이 둘은 이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모비의 곡에 데이빗 린치가 만든 비디오.
일단 무조건 좋다.

거짓말에 대한 단상

JOB SOUND 2021-03-13

거짓말 사실을 말하려면 시간을 들여야함.

거짓말은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돕기도한다.

은폐하는것도 거짓말일까? 딸에게 하는 질문에서 "남자친구 있나?"정도의 피상적인 질문 혹은 안부에 딸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공약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 거짓은 아니게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 같다.

가치를 지키겠다는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 그건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거나, 그(들)의 능력부족의 문제로 끝나곤 한다.

거짓말의 동기

  1. 처벌피하기
  2. 보상이 걸릴때
  3. 타인보호
  4. 자기보호
  5. 존경받으려
  6. 어색함 탈출
  7. 난처상황
  8. 비밀유지
  9. 정보통제로 힘을 행사

사치와 거짓말은 동격

기억은 조작의 산물이다.

중앙 측두엽에 머무른다.

특히 분류기능은.

컴퓨터 보다 더 기능이 좋다.

정답이냐 오답이냐. 지식에 대해.

무엇을 기억할 때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것을 기억하게 된다.

모든 기억은 사실상, 거짓이다. 기억은 유동적이다. 우리가 바꾼다

카피에 대한 여러 해석_워크숍 초대

ARTICLE 2021-03-13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말 다양한 정보를 접합니다. 흔히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정보의 양과 무관하게 정보의 질이 훨씬 중요합니다. 더구나 정보는 늘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건강한 정보를 어떻게 취할 것인가가 현재를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얼마전 어떤 선생님을 뵙게되었습니다. 그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되든 백신을 맞아야 할 때가 올텐데 접종시기를 어떻게 결정하겠냐는 것이었어요. 순간 멈칫하더라구요. 하지만 나름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과 같은 대답을 하는 정보와 지식이 필요해진 사회가 되었다는 겁니다. 백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임상실험이란 무엇인지. 조금 더 필요하다면 그 역학작용과 면역체계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살아남기"위해서라도 반드시 입력해 두어야 한다는 거죠. 정보와 지식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 알아내거나 발견한 정보와 지식이 있을 때 공유해야 하는 것은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자 윤리입니다.

"Copy & paste" 요즘 사용하는 줄임말인 "복붙"은 뭔가 도둑질 같기도 하고, 해선 안되는 것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전 정보를 복사하면서 배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농 섞인 표현이 있기도 하구요. 이번 시즌에서는 건강한 정보의 업데이트는 이전 정보를 정확히 알아야 가능하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이는 인간의 문명 대부분에 걸쳐있습니다. 예술은 어떨까요. 물감의 성질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 생기고, 저항과 반도체가 없었다면 우리는 생활에서 전기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정보와 지식은 결국 기반이 되는 무엇을 존중하고 잘 카피해냈을 때 새로운 창의적 발상으로 작업을 도와줍니다.

복사와 붙이기에서 원본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워크숍을 기획합니다.

medium

ARTICLE 2021-03-13

옷을 살 때 디자인을 고른 후 결정해야 하는 건 사이즈다. L/M/S. 맞춤옷이 아니라면 대충 이 정도에서 골라야 한다. 여기서 M은 중간이다. 큰 옷과 작은 옷 사이에 있다. 스테이크를 시키면 주문받는 사람이 묻는다. 고기는 어느정도로? 이때 특별한 취향이 아니라면 미디움을 시킨다. 적당히 익혀달라는 말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의사소통 가운데 존재하는 중요한 도구임에 분명하지만 그 출발점은 인간이다. (미디어인)인간이 자기표현을 위해 사용하는 데 다양한 미디어로 도구화된다. 말과 글 음악, 이미지, 디지털등이다. 전달되는 미디어는 생명력을 가지고 수용자에게 다가가지만 수용자의 참여가 없으며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즉, 미디어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의사소통의 키워드에 해당한다. 이렇게 볼 때 미디어나 영상을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 보자. 현대사회의 매스미디어에 교육적 논의가 시작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자본력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 미국은, 실용적 관점으로 미디어교육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스미디어는 자본과 결탁한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각종 광고료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 되어지는 시청자는 곧 소비자라는 개념에서부터 출발한다. 더구나 매스미디어가 사회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디어교육의 주 관점이 시청자 또는 소비자운동과 함께 적극적 참여를 통한 감시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재현 매스미디어의 현실왜곡과 한계 상업미디어에서의 소비자 권리 인식등의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반면, 위에서 서술한 교육적 기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현대사회의 정보와 미디어의 분화, 뉴미디어의 적응성등은 분명히 그러한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건강한 매체체험을 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여 자기 언어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소통의 부재는 세대가의 갭을 낳았고, 이것은 겉잡을 수 없는 오해와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만 했지 서로를 경험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미디어 왜곡현상중에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영상과 미디어 교육은 매체화 되어진 자기를 드러내 보고 삶과 세상에 다리를 놓으며 문화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교육으로 이해하는 모든 것은 문자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교육적 생산성을 갖지만 영상교육에서 주 대상자인 10대는 문자의 소통을 버겁게 느낀다. 자기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교육 대상자는 도덕적 판단을 강요받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 할 수 있다. 자기 표현의 도구로 미디어를 사용하여 “나”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미디어와 메시지의 소중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할 수 있다. 21세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상상력에 기반을 둔 창조적 사고력이다.

미디어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수단이라는 표현에 가장 들어 맞는다. 메시지를 전달 하고자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통로이며 수단이다. 인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간단한 소리와 상징적인 그림 그리고 언어로 대표되는 다양한 기호들 을 발전시켜왔고 현대에는 전자문화의 영향으로 더욱 다양해 졌다.농경,유목사회에서 의사소통의 핵심은 듣는 것에 있었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정보(지식,지혜)는 어른(경험자)들로부터 전수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고 듣는 것이 중요한 방법이었으므로 이 시기에 유능한 교사는 얼마나 잘 알아 듣도록 효과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지역사회는 축제나 시장에서 정보를 주고 받았으며 이때 역시 말로 하는 언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마을은 마치 한 몸 처럼 상부상조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청각과 감성을 발달시켰다. 15세기 구텐베르그는 인쇄술은 의사소통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이제 지식이나 정보는 책에 실려서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다. 문맹자는 그가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 해도 가르치는 사람(교사,지도자)이 될 수 없다. 교육의 장소는 가정에서 학교로 교사는 부모나 어른에서 먼저 지식을 습득한 지식인에게로 넘어갔다. 아이들은 가정을 떠나 집단으로 학교에 보내졌다. 전통적인 이념이나 사상보다 새로운 지식에 매료되었다. 문자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시각과 사고력이 요구되었다. 인쇄된 책에 실린 지식은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전기의 발명은 곧이어 라디오와 TV를 일상에서 사용하게 했으며 공장을 움직이게 하고 대량생산된 물건들은 팔릴 곳을 찾아 시장전쟁을 불가피하게 했으며 전파는 모든 나라와 부족과 국가의 이념적인 담을 허물었다. 사람들은 마을 축제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대표 적 매체는 컴퓨터이자 네트워크 자체다.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 있으며 그 망은 마치 신경조직처럼 뻗어나간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위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용하도록 감각을 연장한다. 인쇄의 시대에 기능을 축소시켰던 청각은 오히려 더 중요한 기능으로 부활했다고나 할까. 현재 이 시대의 문화는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의 시대로 고도로 발달된 연결망을 구축하고, 그 중심에 로보틱스/컴퓨팅/인공지능이 자리한다. 다시말해 전기는 단지 에너지가 아니라 인간을 통제하는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

헐...이런 폰트가..

Buscant 2021-02-10

https://player.vimeo.com/video/396674905

참고

JOB SOUND 2021-01-29

프라이탁 애플 이케아 펀샵 쿠팡 이솝 무인양품은 당분간 안녕.

집단사고의 오류

ARTICLE 2021-01-24

"1961년 4월 17일, 미국은 1,400명의 반카스트로 쿠바 추방자들로 구성된 무장 군인들을 쿠바 남부의 해안 피그만으로 침투시켰다.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몰아내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여러 위험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실행된 이 작전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1,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거나 체포되었고, 미국은 포로들의 몸값으로 5,000만 달러 상당의 식량과 의약품을 지불해야만 했다. [피그만 침공사건]은 당시 미국 내 최고의 군사전문가와 상황분석가들이 참여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만장일치를 이루어내야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는 중압감은 결국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더구나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그 회의구조와 결정내용은 실행에 옮기기까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속력이 높은 소수의 의사 결정 집단이 대안에 대한 분석과 이의 제기를 억제하면서 공동의 합의를 쉽게 이루려고 하는 왜곡된 사고 유형을 “집단사고의 오류”라고 말한다. 결국 집단 사고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집단 착각 현상인 셈이다. 위의 사례뿐만 아니라 미국의 베트남 확전 결정,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등도 집단 사고의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집단에서 종종 발생되며, 그 발생 원인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공동체의식이 강한 것은 조직의 강점으로 보이지만, 리더에 의해 주도된 공동체이거나 대의명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조합한 의식일 경우에 발생한다. 이때 옳고 그른것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또 다른 경우는 집단에 속한 성원이 속된말로 가방끈이 긴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한 적 없을 때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읽고 듣고 배운것이 그 경험을 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빈틈없을 것이라는 추정이 생긴다. 집단 사고가 발생하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대안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대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수가 선호하는 안에 대해 비판적 사고에 입각한 재검토가 어렵다.

집단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집단사고의 오류를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다. 그는 조직이 집단 사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거나 리더가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논의 집단 자체를 이원화한다. 이 두가지 조차 실행할 수 없는 경직된 조직이라면 제기된 주장에 대해 흠을 잡는 반론 대변인을 의도적으로 두는 방법이 있다. 집단 사고는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집단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과 징후들을 공유하는 한편, 집단내 브레이크 장치를 미리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개인에 비해 오히려 집단이 더 극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교황청에서는 교황을 선출할 때 의도적으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는 제도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추천이 될 정도라면 이미 교회 내에서 검증된 위인이기에 교황이 될 재목이 아니라고 트집을 잡는 다는 것은 힘이 들었으며, 교회내의 입지도 문제가 되었다. 그 완충작용이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제도였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과 추천인들은 그가 왜 교황이 되어야 하는가를 말하는 동안, 비숍중의 한 사람은 ‘악마의 대변인’이 되어 그가 교황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것. 우리의 의사결정 구조안에는 악마의 대변인이 있는가.

생일이네.

JOB SOUND 2021-01-21

어쩌다 보니 오늘이 생일이다.
단기 4302년. 그레고리력 1969년. 己酉年 12월 9일.

단기를 세는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쉽지만, 음력이 가물가물해지는 것도 안타깝다.
전통적인 것 뭐 그딴걸 지켜야 한다는 것 보다는 모두가 하나의 기준에 통일되어 버리고 개성을 버리는 느낌이 싫다.
그래서 난 음력을 더 선호한다.

어려서 달이 좋았던 이유는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깃발을 꽂아서 찜해도 살 수 없는 땅이 눈앞에 보인다는 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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